혹시 방학 숙제를 미루고 미뤘다가 벼락치기한 적이 있는가? '당연히 숙제는미뤘다 하는 거 아닌가?'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정상이다. 나 역시 개학 바로 전날 친구들과 모여, 한놈은 부르고 나머지는 받아 적는 식으로 방학 일기를 돌려막기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예전의 우리처럼, 숙제를 미루고 미뤘던 사람들이 지금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연말이 끝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공단의 독촉에 피가 마른 사람들은 안내지를손에 쥐고 흔들며 병원 문을 열고 밀려들어 오고 있다.
동네 검진 내과는 연말이 되면 전쟁터가된다. 그리고 그 전쟁의 강도는 뒤로 갈수록 강해진다. 12월 31일은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날이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지노선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1월이 되면 마치 휴전협정을 한 것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게 된다.
연말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이 아니라 '출정'하는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을 접수하고 걸려오는 예약 전화를 받다 보면 눈 앞에 물컵이 보여도 '어어'하다가 결국 물 한 모금 못 먹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입술은 말라 터지고 눈이 퀭해져서 밥을 먹다가 눈을 돌려 보니 옆에 앉은 내시경 담당 직원은 머리가 산발이 되어 삼일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밥덩이를 삼키고 있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 이름을 똥줄 타게 접수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옆으로 슬쩍 다가와서 내 귓구멍에다 본인 휴대폰을 쑤셔 넣었다. 전화기 저 너머에서는 "아니 보험 서류를 알아서 해줘야지, 무슨 이런 병원이 다 있어."라는 보험사 직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명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통화가 길어졌다. 그렇게오 분쯤 지나자 자신의 이름이 접수되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불만이 터졌나 왔다. 그 분노는, 처음에는'한가하게 전화나 받고 있는 직원(나)'를 향하다가 갑자기 물꼬를 틀어서 '새치기로 먼저 서류를 챙기려는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아니, 할머니 기다리는 사람 안 보여요?"
'나는 서류만 할 거야. 서류만."
"할머니 때문에 저 아가씨(?)가 우리 이름을 접수를 못하잖아요."
전화 상담과 접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나에게서 초보 직원의 어설픈 기운을 느낀 환자들이 갑자기 내 편을 들었고, 결국 할머니가 순서대로 기다렸다가 서류를 받기로 결단을 내려주는 바람에 그 혼돈의 순간은 지나갔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순간이었다.
환자들의 분노 게이지가 가장 상승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검사를 모두 끝내고 비용을 정산할 때이다.
"아니,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나왔어?"
"초음파도 추가하셨고요, 내시경 수면 비용도 나왔고...."
잠에서 막 깨어 비몽사몽인 환자들에게 검사내역과 비용을 조목조목 상기시켜준다. 그러고 나면 약 80%의 환자들은 수긍하지만 20%의 환자들은 다짜고짜 화를 낸다. 작년에는 비슷한 일로 어느 중년 아줌마에게 "똑바로 못해?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경멸스럽게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집에 와서 누울 때까지 나를 따라왔다.
우리에게는 방탄복이 없다. 접수대 너머로 총알이 난사되어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멘털밖에 없다. 방탄복이 안된다면, 어설픈 갑옷이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흙더미로 얼기설기 꾸며낸 방공호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 전쟁터에서 우리는 안타깝게도 알몸이다.
그렇다면 전쟁터에는 몸으로 때우는 병사만 있는 것도 아닐테고, 머리를 쓰는 브레인들 말하자면 장군급되는 인재들도 있을것 아닌가. 무기가 없다면 전략으로라도 승부를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당신은 생각할 수도 있다.
매주 출장 오던 유방초음파 원장님이 갑자기 펑크를 냈을 때 일이다. 삽 십 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아서 전화를 걸어보니 깜빡하고 여행을 왔다는 것이다. 예약환자가 하필 그날은 일곱 명이나 있었다. 귀중한 연말 토요일의 시간을 쪼개어 병원에 온 환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급기야 삿대질과 욕설도 쏟아졌다.
우리가 그들에게 수십 번 머리를 조아리며 양해를 구한 후에야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환자들이 돌아가고 난 후 등줄기에 흐른 진땀을 식히고 있을 때, 갑자기 원장님 방문이 빼곡히 열렸다.
"갔어?"
아니, 우리 원장님이 병원 내에 있었다고???우리는 환자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원장이 병원 안에 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원장실에서는 작은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총알받이가 되는 동안에 적들에게 들킬까 봐 숨죽이며 방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장군은 그날 병사들이 다 쓰러질 때까지 사령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메시지로 어떤 행동지침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 날 우리는 헐벗은 몸뚱이에 죽창 하나 안 들었다던, 인해전술로 이용된 6.25 그 때 그 중공군이 된 기분이었다.
벌어먹고 사는 일은 원래 전쟁이다. 내가 방문한 어떤 병원도 혹은 식당도 아니면 카페도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전쟁터일 것이다. 오늘은 수류탄이 터질 수도 아니면 대포가 날아올 수도 있고 의외로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 스펙터클한 일들을 겪다 보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래서 결코 지루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인생이 무료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면 연말에 내과에 와 보는 것을 추천한다. 환자와 직원과 오너들이 한데 엉켜 빚어내는 생존 서바이벌 게임 같은 상황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삶과 전쟁이 알고 보면 그냥 한 끗 차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