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인 조르바 >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사실 여자로서 불편한 문장들이 글을 읽어내려 가는데 많은 걸린 돌이 되곤 했다. 특히 마을에 과부로 인해 자살한 청년 때문에 과부의 목을 칼로 베어 죽인 것에 대한 것들과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을 볼 때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그리스인 조르바가 발간했을 1940년대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여 글을 읽기 시작한다면, 그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즐기는 조르바와 조르바를 통해 자유를 알아가는 두목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크로타 섬의 향수를 맡게 했던 것 같다. 피곤하면 바다를 품고 있는 자갈 위에서 잠이 드는 시간, 밤낮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수영하고 싶으면 찰랑 거리는 파도로 뛰어드는 모습들이 내가 꿈꾸던 자유를 그들이 실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유가 내가 자라 온 고향이 되어 나를 향수에 빠트리게 한 것이다.
두목의 어느 날 아침 나비가 번데기에서 벗어나는 걸 인간의 힘으로 돋다 날개짓 한 번 못하고 죽는 것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구절을 통해 나는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어떤 것에도 매료되지 않고 그저 발길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삶의 순간순간 내가 살아가면서 남들이 나아가는 속도와 내가 가는 속도의 비교하며 서두르고 안달 부리지는 않았는지 혹은 아직 날갯짓을 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을 억지로 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영원한 리듬’이라는 단어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된다. 조르바와 두목은 케이블 고가선이 마을 사람들과 수도승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무너져 내렸을 때 창피해하지도 좌절하고 실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땀을 흘리고 춤을 췄다. 정말 그 대목에서 어떻게 돈과 시간 모든 것이 다 손해를 봤는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춤을 출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존경의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교수님이 수업 중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을 집중하는 사람이 되자” 어쩌면 조르바와 두목은 일어난 일에 있어 그들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것은 그 또한 영원히 내 삶의 흐르는 하나의 리듬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이야기 속에서 내 삶의 적용해야 하는 것들은 내 삶의 리듬이 흘러가는 것에 스스로를 다른 이의 삶의 리듬에 맞춰 채찍질하지 말고 내게 필요한 박자를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박자가 때로는 잘못 어긋나고 맞지 않아도 그 또한 리듬의 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새로운 리듬의 집중하며 춤을 추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