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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마음 Mar 09. 2021

중환자(실)

그것이 알고 싶다. (ft. 연명의료)

의료기관 종사자가 아니고서야 병원의 시스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나조차도 내가 근무하는 곳 이외의 체계가 어떤 식으로 되는지는 또 배워야 하는 부분이니까.

그래도 대충 그 단어가 갖는 어감이라든지 뉘앙스, 그리고 미디어에서 봤던 이미지들이 합쳐져서 대강

중환자실 치료라고 하면 '아이고- 그래?' 하며 그거 참 큰일이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거겠지 싶다.


이전번에는 한 어르신 환자를 담당하게 됐다. 90세 이상 100세 미만이셨던 어르신은 고집불통 그 자체였다.

어르고 달래기에 나름 근자감을 가지고 있던 나도 당해낼 수 없는 강력한 불통의 캐릭터였다. 결국 난 그 듀티 때 그 어르신의 등에서부터 엉덩이의 피부를 사정할 수 없었다. (...) 아무튼 이건 이거고.

어르신의 일관된 주장은 이것이었다.

'내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말 것이지 왜 자꾸 사람을 성가시게 하느냐. 내가 노인네라고 우습게 보느냐. 나도 다 알고 있다. 내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마는 것이다.'

분명히 중환자실 입실 동의서에 직접 사인하셨던 거로 확인이 되는데. 입실하시고 나서부터 쭉 중환자실에서의 치료를 거절하고 계셨다.

어르신의 입장에 대해 생각을 또 하고 하다가 도달한 지점은 그것이었다.

사람들의 중환자실에 대한 이해. 연명의료 치료에 대한 이해.

아직 우리 사회가 합의점을 찾는 데 방황하고 있는 그 지점이 여기일 수도 있겠다 하는 가능성 말이다.


그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것은 아마 '노인'이라는 나이를 이유로 '나'라는 개인의 의지를 너희들 마음대로 침해하지 마라 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병실에서 수술 후 안정하는 도중에 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숨쉬기가 좀 힘들어지는 판국에 의사가 등장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악화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합시다 하는 말을 듣고 별생각 없이. 그러자 해서 도착한 곳이라는 데가 도떼기시장도 아닌 것이 방 문도 없고 널따란 공간에 덩그러니 침대가 있고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하고 여기저기 기계소리가 여과 없이 들리고, 하다못해 천장의 전등불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장소로 오게 된 것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보통 입원실- 즉 주진료과에 따른 각각의 일반 병실로 배정을 받고 입원 생활을 하게 되는 데 치료 과정에서 종종 환자의 상태의 변화에 따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료가 진행되어야 하는 때가 있다. 보통 우리나라 일반병실에 입원했다고 가정을 하면 담당 간호사가 있긴 하지만 그 간호사는 나만의 간호사가 아닌, 10~20명가량의 다른 환자들의 공공재 같은 위치에 있다. 병실에서의 중증도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는 얘기겠지만, 그만큼 환자가 어느 정도 의료진의 간섭 없이 병원 내에서 자신들의 시간을 갖고 퇴원으로 치료가 종료된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서)돼서 지속적으로 의료진의 케어가 필요하다 판단이 드는 경우, 보통 활력징후라고 표현하는 호흡/맥박/혈압과 의식의 변화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 중환자실로 이동하게 된다. 중환자실에는 각 환자에게 개별의 모니터 기구가 의무적으로 부착되며 환자의 심전도, 혈압, 산소포화도가 모니터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속적으로 보여지며 병원의 경우마다 다르지만 2~4명의 환자당 한 명의 간호사가 배정이 된다. 그리고 연명의료라고 칭해지는 생명의 유지에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치료들, 거꾸로 말해 해당 치료를 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 치료들이 주도적으로 중환자실에서 수행된다.

-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적용, 투석, 승압제의 사용, 심폐기 사용, 수혈 등이 연명의료치료에 포함된다.


중환자실에서의 심폐소생술- 출처는 밑에
인공호흡기(기도삽관과 파란색/하얀색 선들로 Ventilator 기계에 연결) 적용-출처는 밑에
투석 적용(왼쪽 큰 기계)-출처는 밑에

기계가 해당 환자의 취약한 장기의 기능을 대신한다고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보통 병원 간호사 하면 주사를 많이 떠올리는데 중환자실에서 사용하는 주사는 그것보다 훨씬 다양한 굵은 주사들이 많다.(inserted by Dr)

그런 관들을 통해 여러 기계와 환자의 신체가 -연결-되고 이것이 기계치료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말초정맥주사 - 밑의 것들에 비교하면 앙증맞다.
투석 도관 - 출처는 밑에
중심정맥관- 출처는 밑에
왼쪽 대퇴 혈관에 삽입된 심폐기(ECMO) catheter- 출처는 밑에


어르신을 상대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것은, 여느 노인분들이 으레 하는 말 즉, '아유 늙으면 죽어야지 뭐.' 하는 류의 마인드에서 그런 말을 하신 것인지 혹은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은 마음에 치료를 거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자신의 확고한 의사로 치료를 거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경우, 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신 상태에서 무조건 안 하겠다 말씀하시고 계신 건 아닌지. 그것을 구분해 내기가 어려웠던 점이었다.

어르신이 하지 않겠다고 말하신 순간 '어르신 연명의료계획을 지금 세우시겠다는 의미신가요? 앞으로 인공기도삽관을 하고 싶지 않으시다는 의미이신가요?' 하고 여쭙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 이런 이유로 병원은 역설적이게도 어르신이 거듭 강조하시던 말, 내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와는 반대로 종종 어르신들의 의사는 접어두고 보호자의 결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어르신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병원은, 중환자실은,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어르신을 듀티 내내 들볶을 수밖에 없었던 담당 간호사는 그 날 입에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는 후문.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도입된 현재 시점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 꼭 살려내주세요. 할 수 있는 것 다해주세요.'라고 무작정 말할 시점은 지났다 싶다. 그만큼 개인의 인권을 스스로 챙기는 시대가 도래했다. 자신이 앞으로 중환자실에 내려가면 어떤 치료를 받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해와 그 치료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어떤 다른 종류의 것이라도 적응하고 치료에 응하겠다 하는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런 것들은 어떤 불가피한 상황에서 내가 가족 구성원의 연명의료치료에 대한 결정을 대신해야 할 때도 고려해봐야 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마무리하며,

원래 계획은 중환자실 쇼크라는 관점에서 글을 써볼까 했었지만 글의 방식을 이렇게 우회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현재 병원에서의 치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의사가 치료 전 설명을 한다지만 처음 들어보는 개념을 한 번의 설명으로 그것의 온전한 의미를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으니까.

종종 환자들은 말한다. 여긴 다신 올 데가 못된다 하고.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그쵸. 병원은 일단 오면 고생이에요.

어쩌겠나 그것이 팩트인걸. 아유 잘 쉬다 갑니다. 하는 호텔 같은 곳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런 병원을 한 번 생각해본다. 다른 사사로운 감정 섞지 않고, 이 병원이 내게 사기를 치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덜어두고, 이 환자가 자꾸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본다 하는 판단도 하지 말고 환자와 의료진이 담담하게 개인의 치료 범위에 대해 논하는 그런 장면을.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병원을.

아마 그때가 되어서야 현재 도입된 연명의료계획에 관한 서류들도 제자리를 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환자(실)에 관해서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 대한중환자의학회 사이트를 참고해주세요.

https://general.ksccm.org/html/






[출처]

-http://educationcareerarticles.com/education-articles/higher-education-articles/acls-nurse-essential-critical-care-nurses-certified/

- https://www.google.com/url?sa=i&url=https%3A%2F%2Fwww.healinghealth.com%2Fwp%2Ficu-acquired-weakness%2F&psig=AOvVaw2BvW0-jJrSo8KcPTqwWBHH&ust=1615366462971000&source=images&cd=vfe&ved=0CA0QjhxqFwoTCKiitKLrou8CFQAAAAAdAAAAABAV

- http://www.kukminusa.com/news/view.php?gisa_id=0923989732

- https://www.google.com/url?sa=i&url=https%3A%2F%2Fwww.researchgate.net%2Ffigure%2FNon-cuffed-internal-jugular-double-lumen-catheter_fig7_221920739&psig=AOvVaw2LfpT9GmFCTOpD6USw5Lg8&ust=1615367638861000&source=images&cd=vfe&ved=0CA0QjhxqFwoTCMCk09Dvou8CFQAAAAAdAAAAABAH

- https://www.google.com/url?sa=i&url=https%3A%2F%2Ficuunwrapped.co.uk%2F2018%2F07%2F24%2Fcentral-lines%2F&psig=AOvVaw0LZGveC3capOgZsfSIyZQ1&ust=1615367467389000&source=images&cd=vfe&ved=0CAIQjRxqFwoTCJiLh47wou8CFQAAAAAdAAAAABAE

- https://epmonthly.com/impmedia/2012/05/ECM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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