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남과 다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가 하는 말이 다소 공격적이라고 했다.
그럴 때가 있었다. 신규 시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신규에서는 조금 벗어나서 밑에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때였다. 간호사 2~3년차 시절.
점점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출근하면 왜인지 쉬운 날이 없었고, 담당하는 환자들의 중증도도 중증도이거니와 출근하면 새로 입실하는 환자를 받는 역할은 늘 당연히 나였다.
중환자실이지만 부서 크기가 크진 않아서 일을 하면서도 막내일 때가 많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일하는 것 또한 나름의 스트레스로 작용했으리라.
애써서 일했음에도 해놓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못해 놓은 것에 대한 피드백이 날 괴롭혔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챙기지 않는 것까지 나는 챙겨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인계 드리는 선생님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 많은 날이면 인계를 주고 나서도 마음이 후련하지가 못했다.
중심을 잘 잡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약간의 반항기를 개인적으로 담고 있어서 흠잡히기가 싫었다.
약한 모습도 보여주기가 싫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절대 울지 않았다.
부서교육을 받는 기간에 어레스트가 난 환자가 있었는데 나도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나 보다.
그리고 그걸 본 프리셉터 선생님이 날 잡아 끌어서 환자 옆에 서게 했다.
그 날에도 나는 버텨냈었다.
독립을 해서 온갖 이벤트들을 맞닥뜨리고 억울한 상황이 오거나 해도 오기로 버텼던 것 같다.
의사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거나. 환자나 보호자와 트러블이 생겨도 내 생각하기로는 꾹꾹. 잘 다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거다. 사실 알게 모르게 많이 지치고 있었던 거였다.
부서 사정상 번표가 쉽지 않다 보니 하루 걸러 출근하기 일쑤거니와 온콜 오프가 잦았기 때문에 쉬는 날에도 언제 병원 전화가 올지 모른다거나.
돌아보면, 정말 바보스럽게 병원에만 매달렸던 기간이었다.
잘 다뤄왔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경험상으로는 전신마취 후 깨는 과정에서 환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섬망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많다.
그 날 내가 담당했던 환자가 그런 환자 중 하나였는데
온갖 소리를 다 들었던 거로 기억한다.
년으로 끝나는 비속어란 비속어는 모두. 너 따위는 필요없으니 꺼지라는 말과.
분명 오늘 서로 처음 본 사이인데 이렇게 적대적일 수 있을까 하는 모든 언행들.
3년차쯤이었던거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런 섬망 환자가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에 평소라면그렇게 민감하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가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입실한 이후로 계속 입씨름을 하면서 이미 마음이 다치긴 했으나 나의 일, 간호는 해야했기에
의사에게 환자가 아파하는 것 같다고(질문에 일부러 대답을 안하셔서 사정이 불가했다..) 노티를 하고 부랴부랴 진통제를 들고 갔는데
난 맞지 않겠다 몸을 뒤틀어가면서 내가 어떤 위협이라도 되는 듯 필사적으로 피하는 환자를 보고 있자니 황망한 마음이 들면서 사고가 멈췄다.
그대로 트레이를 카트에 놔두고 빈 침상에 들어가서 주저 앉았다. 그리고 대성통곡을 했다.
제가 환자분한테 뭘 했는데 이러시는 거예요.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병원이예요.
네 년 도움 필요없어.
엉엉 울면서 그간 내가 붙잡고 있던 몇가지들을 손에서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하지 말자. 너무 마음 쓰지 말자. 너무 잘하려 하지 말자.
내 일 좀 잘해보려 하는데 이 마음 안 따라 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일 좀 잘 해놨다 싶으면 일은 왜 늘기만 하는지.
온 세상 일을 내가 다 하는 것 같았을 때. 부서의 암묵적 싸움닭이었던 나. 비꼬면서 말하기 선수.
지금 나를 보고 동기들은 많이 변했다 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그간 그렇게 이런저런 돌들을 만나면서 동그래지는 법을 만난 덕이다.
최근에 후배 간호사와 전공의가 싸움이 났다. 서로 얼굴이 빨개지도록 분개하면서 서로가 서로 이해가 안되는 상황.
내가 뭐라고 싶었지만 그래도 몇 년 선배라고 끼어들어 대신 전공의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내가 잘 타이를게요. 애가 좀 바쁘다 보니 저렇네. 미안해요. 기분 풀어요. 우리 다 환자 잘 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내가 따끔하게 말 할게요.
그래놓고는 부러 후배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힘든 사람한테 잔소리 해봤자 나 잘났다 하는것 밖에 더 되나 싶기도 한 것과
나도 그래봤던 적이 있어서.
둥글어지는 건 자기가 스스로 부딪혀 깎이는 길밖엔 없기에.
이제는 내가 나의 예전 부서 선배님한테 웃으며 앓는 소리를 한다.
-선생님 저 싸움닭 좀 어떻게 해봐요. 무서워서 같이 일을 못하겠네.
-예전 싸움닭이 할 말은 아니지 않니..?
좀 지나서 후배가 슬그머니 옆으로 와서 작게 소곤거렸다.
-선생님 죄송해요..
긴 말은 안했지만, 사실 지금 지나고 보면 그렇게 사납게 구는 것만이 방법은 아님을 조금은 알겠다.
또 이래놓고서도 나도 사정이 안 좋아지면 초라한 내 인성을 뽐내기 일쑤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유연해지는 법을 배우는 거겠지하고 중심을 잡는 연습을 계속 해보는 거다.
병원에 공공연히 보이는 자라나는 싸움닭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 글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