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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미역 못잖은 명성, 동해 ‘대진·어달’ 미역!

162. 아카이브_ 동해

by 조연섭

미역 한 장에도 이야기가 스민다. 맨발 걷기를 하던 주말 어달해변에서 미역을 줍는 할머니를 만났다. 손에 들린 미역은 바닷바람에 살짝 말라 윤기가 흐르고, 그 작은 잎 사이로 동해의 푸른 바다가 비쳐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거 지역학 기록을 위해 찾았던 대진·어달 마을의 미역 이야기와 오래된 사진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동해 망상해변에서 남쪽으로 노봉마을 굴다리를 지나면 묵호의 대진·어달 마을이 펼쳐진다. 한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다른 쪽으로는 어달산이 산그늘을 드리운 풍경이 반긴다. 대진 사람들은 봉화대가 있다 하여 ‘봉화산’이라 부르지만, 해변 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이름은 ‘갯틈이(개테미)’다. 바다와 산이 맞닿은 이곳에서 대진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 그리고 그 자연이 선물한 가장 소중한 먹거리 중 하나가 바로 ‘미역’이었다.


미역 하면 부산의 기장미역을 떠올리지만, 사실 대진·어달 미역도 이에 못지않은 명성을 자랑했다. 이곳 미역은 깊은 바다에서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바위에 착생한 자연산이다. 마을 앞바다에 줄지어 있는 돈바위, 새똥바위 같은 바위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품은 곳이었다. 덕분에 멀리 나가지 않아도 문어, 다시마, 천초, 우뭇가사리, 섭, 소라 등과 함께 최상의 미역을 손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

어달 미역줍기,사진_조연섭

대진·어달 미역이 특별한 이유는 바닷가에서 해풍으로 건조하기 때문에 국을 끓이면 곰국처럼 뽀얀 국물이 우러나고, 퍼지거나 질겨지지 않고 야들야들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미역국 한 그릇에서도 바다의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것이 이곳 미역의 진정한 매력이다.


지금은 기장미역이 대중적으로 더 알려졌지만, 대진·어달 미역도 과거에는 그 못지않은 명성을 누렸다. 다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생산량이 줄어들고, 널리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자란 미역은 바다의 맑은 기운과 바위가 품은 영양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의 선물이다.

1960년대, 어달 대진 미역줍기, 사진_동해문화원DB

오늘 미역을 줍던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바닷바람에 미역을 말리며 손으로 만져보았다. “이렇게 말려야 미역이 살아.”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다정한 손길이었다.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의 손끝에서 역사가 이어지고, 그 역사 속에서 우리는 참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바다에서 온 작은 선물, 대진·어달 미역. 그 안에는 바다의 시간과 사람들의 삶이 함께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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