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맨발 걷기
바람이 분다, 그리고 나는 걷는다
추암해변을 걷는다. 11월 17일, 날씨는 반팔 차림조차 무색할 만큼 덥다. 영상 17도. 겨울이 아닌가? 이 계절 낯선 따뜻함은 매년 반복되는 기후 변화 증거로 다가온다. 지구는 점점 변하고 있다. 재난사회가 이미 시작된 것일까? 나의 발끝으로 닿는 모래는 여전히 부드럽지만, 머리를 스치는 강풍은 날카롭다.
맨발 걷기의 적은 강풍이다. 강풍은 모래를 휘저어 눈을 따갑게 하고,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발아래 단단하게 닿아야 할 땅도 흔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걷는 행위는 하나의 의식이 된다. 나 자신을 향한 도전이며, 세상과의 대결이다. 그래도 나는 걷는다. 바람을 마주한 채, 모래의 온기를 느끼며 발바닥에 전해지는 생명의 과학을 만나기 위해.
바람은 질문을 던진다. 왜 걷는가? 무엇을 위해 발바닥을 땅에 붙이는가? 나는 답한다. 걷기는 생명에 대한 탐구이다. 신체를 움직이며 자연과 교감하고, 발끝으로 느껴지는 생명의 흔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발바닥은 세상과 연결된 가장 원초적인 통로다. 땅의 온도, 모래의 질감, 바람의 방향까지도 발바닥은 기억한다. 우리는 늘 신발이라는 장벽을 통해 세상을 느끼지만, 맨발은 그 장벽을 허물고 자연에 다시 다가서게 한다.
오늘의 해변은 낯설다. 겨울 초입이어야 할 이 시기에 더운 공기가 흐르고, 이마로 불어오는 강풍은 날카로운 경고음처럼 느껴진다. 지구는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 메시지는 단순하다. “너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라.” 인간은 너무 오랜 시간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바람을 막고, 땅을 뒤엎으며, 강물을 틀어막았다. 이제 바람은 우리를 향해 무언가를 요구한다.
맨발 걷기는 생존의 과학이다.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서 있는 땅을 느끼고,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다. 맨발 걷기를 통해 나는 다시 자연과 연결되고, 인간이 얼마나 자연에 의존하는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강풍은 이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렬히 느끼게 한다. 그 바람 속에서도 걸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의 단절을 넘어서기 위해, 생명의 원리를 다시 배우기 위해.
바람은 여전히 분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추암해변의 파도 소리와 함께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결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간다. 강풍은 나의 호흡을 흔들지만, 동시에 나를 살아있게 한다. 생명의 과학은 이렇게 내 몸과 마음으로 이어진다.
걷는 동안, 나는 이 생각을 되새긴다. 바람은 적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 힘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걷는가?” 그리고, 나는 답한다.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기 위해.”라고 말이다.
글, 사진_ 조연섭
장소_ 추암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