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만학일기
인류세, 소리, 그리고 예술의 경계, 특강으로 만나는 광주비엔날레 정신
사운드스케이프, 인류세, 비인간 키워드와 ‘판소리’ 주제의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현장학습을 앞두고 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원우 대상 특강이 열렸다. 19일 저녁 온라인 세미나로 진행된 “소리란 무엇인가” 주제의 광주비엔날레 선행학습이다. 양진호 인문학교육연구소 소장은 특강은 소리에 대한 과학적, 음악적 이해는 물론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키워드 ’ 인류세‘와 ‘비인간’ 중심의 ‘사운드스케이프’와 동시대 예술과 사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시간이었다. 익숙한 주제를 낯설게 하여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의 정신 “동시대 예술과 사상은 사람 개념의 무한한 확장,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평평한 관계” 등 작품에 담긴 철학과 가시지 않는 긴 여운이 남는 시간이었다. 이 글은 광주비엔날레의 정신과 작품에 담긴 철학 등 느낀 점과 여운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소리와 인류세, 비인간적 사유 확장
강사는 광주비엔날레의 판소리는 우리의 판소리에 영감을 받은 감독의 철학은 반영됐지만 비엔날레에서 보여주는 판소리는 '소리판'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평창의 한마을에서 담은 자연의 소리와 버려진 페트병과 사람을 모티브로 밟히며 발생하는 페트병의 소리 등 소리를 단순히 물리적 현상이 아닌, 인류세라는 지질학적 시대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생성하는 관계적 사건으로 풀어냈다. 인류세는 인간의 행위가 지구 생태계 전체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시대를 뜻한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소리를 통해 비인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한다는 접근은 강렬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창조한 기계 소음, 바람 소리, 새소리, 그리고 기술적 미디어 사운드는 모두 같은 평면 위에서 관계를 맺는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평평한 관계”라는 말로 요약되며, 소리라는 매체가 환경과 존재를 하나의 장(場)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구임을 일깨워주었다.
예술 경계, 미디어를 보는 새로운 눈
소리를 중심으로 예술과 미디어를 사유하는 이 시간은 음악과 미술, 그리고 뉴미디어의 경계를 허무는 경험을 제공했다. 특히, 소리가 청각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시각, 촉각 등 감각 전체와 연결된 ‘공감각’적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특강에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이러한 관점을 가장 잘 보여준다. 사운드스케이프는 특정 환경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의 총체적 구성이다. 이는 기술적 미디어가 아닌, 자연과 환경이 생성하는 살아있는 미디어로 볼 수 있다. 예술이 반드시 인간의 의도적 창조물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 비인간적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환경적 예술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시각은 새로웠다.
머레이 셰이퍼(Murray Schafer)는 현대 사회에서 소리와 인간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며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개념을 창안한 캐나다의 작곡가이자 환경 음향학자다. 그는 인간과 환경의 소리 관계를 예술적, 철학적으로 접근하며 소리와 환경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머레이 셰이퍼는 소리를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닌, 인간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의 매개체로 보았다. 그의 사상은 환경과 소리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현대 음악과 예술이 자연, 비서양 문화, 그리고 일상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사람 개념의 확장, 동시대 예술 흐름
강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이는 동시대 예술이 추구하는 탈경계적, 탈중심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달을 “가장 노래된 TV”로 묘사한 백남준 작품은 시적 은유보다 달이 가진 원초적 미디어로서의 본질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달은 인간의 감정, 기억, 그리고 문화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기술적 미디어와 자연적 미디어 간의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이고 감성적인 연결의 이상을 제시한다고 했다.
뉴미디어는 특히 이러한 사유를 구체화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과 AI, 알고리즘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소통하는 새로운 매개체가 된다. 이를 통해 인간 중심적인 예술 개념은 “사람”의 범주를 확장시키며, 모든 존재들이 관계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하게 한다.
강연은 낯선 주제와 심오한 사유를 요구했기에 쉽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렵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강연 후,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미디어와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가 기술적 차원보다 사유와 관계를 담아내는 철학적 이해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소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소리를 정의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소리 속에 담긴 존재의 관계, 환경적 예술, 그리고 뉴미디어 시대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라는 요청이다. 특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부족하지만, 동시대 예술과 사유를 확장하는 첫걸음으로 충분했다. 필자는 약속을 하고도 일정상 비엔날레 현장 방문은 못하지만 광주비엔날레 현장을 방문하는 원우들은 새로운 감각을 바탕으로 작품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존 케이지’의 침묵의 노래 4’ 33”는 음악이 단순히 악기나 멜로디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태도와 환경을 인식하는 방식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음악의 본질과 경계를 재정의하며, 우리로 하여금 듣지 못했던 소리, 무심히 흘려보낸 환경의 소리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단순 실험적 작품보다 현대 예술과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획기적인 선언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강윤주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함께 학습하고 소통한 원우들 덕분에 더욱 풍부한 논의와 배움의 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강의 자료, 캡처_ 조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