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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Dec 19. 2024

이 눈사람도 아침이면 녹겠지?

168. 동쪽여행

눈 내리는 밤, 눈사람과의 잔상

눈송이가 밤하늘에서 조용히 내려오고 있었다. 동해의 골목길은 새하얗게 덮여 있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두 청소년이 열심히 눈을 굴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야명주처럼 눈밭 위, 두 사람 대화와 웃음소리는 찬 바람을 타고 퍼졌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눈 사람과 즐거운 청소년들, 사진_ 조연섭

“눈 진짜 많이 온다.” 한 아이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 정도면 진짜 제대로 된 눈사람 만들 수 있겠지?”

“당연하지!” 다른 아이가 대답했다. “눈이 딱 좋아. 이건 눈사람 만들라고 하늘에서 특별히 내려준 거 같아.”


그들은 웃으며 허리를 숙여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작은 눈덩이는 점점 커지며 언덕길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몸통으로 하자. 네가 머리 만들어.” 먼저 눈덩이를 완성한 아이가 말했다.

“알았어.” 옆 아이가 답했다. “근데 머리를 너무 크게 만들면 균형이 안 맞을 텐데. 적당히 해야지.”

“너 머리만큼이면 완벽하지 않을까?” 농담을 던지며 한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뭉치는 손끝은 차가웠지만, 두 친구의 대화는 따뜻했다. 그렇게 몸통과 머리를 조립하고, 나뭇가지를 찾아 팔을 붙이고, 돌멩이로 눈과 입을 만들었다. 눈사람이 점점 형태를 갖춰갔다.


“봐봐, 완벽하지 않아?” 한 아이가 말했다.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아. 밤새 여기서 우리 대신 겨울을 지켜줄 것 같아.”

“근데 이름을 지어줘야 하지 않을까?” 키 큰 아이가 물었다.

“그래… 음, ‘하얀 친구’ 어때?” 잠시 고민하던 끝에 키 작은 아이가 말했다.

“하얀 친구라… 심플하긴 하지만 괜찮네.” 두 사람은 눈사람을 향해 만족스럽게 웃었다.


눈 내리는 밤하늘을 잠시 바라보던 중, 키 큰 아이가 동화 속 주인공처럼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근데 있잖아, 이 눈사람도 결국 아침이면 녹아버리겠지?” 옆의 키 작은 아이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괜찮아. 눈사람이 녹아도 우리가 만든 건 남잖아. 그리고 눈은 또 올 거고, 또 다른 친구를 만들면 돼.”


그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는 점점 더 두텁게 쌓였고, 그들의 발자국은 점차 사라져 갔다. 하지만 눈사람은 하얀 동해의 밤 한가운데에 당당히 서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동해의 밤은 그렇게, 두 청소년과 하나의 눈사람이 만들어낸 순수한 이야기로 완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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