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이연 Mar 14. 2022

여행에서 창피함은 그저 순간일 뿐!!

땡볕 '왕궁'과 비바람 '왓 아룬'... 덥고 비 맞고 신나고~

태국에서의 기상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이 늦어도 오전 7시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좀 더 늦잠을 자도 된다. 그다지 바쁜 일정도 없을뿐더러 늦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매일 아침 어김없이 7시 전에 눈이 떠진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잠이 일찍 깼는데 일부러 더 잘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늦어도 오전 9시 전에는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서는 것이 태국에서의 지연스런 일상이 되었다. 당일 정해진 목적지가 없어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호텔을 나선다. 목적지는 걷다가 즉흥적으로 찾아도 충분하다. 나는 시간에 쫓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여유가 바로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행복이다.


어쩌다 보니 '왕궁'


일단 이 날은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호텔을 나섰다.  이 날은 배낭 없이 가볍게 크로스백을 메고 걸었다. 카오산로드의 주변을 걸어보니 사방이 온통 빌딩 숲인 방콕의 도심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그다지 높은 건물은 없고 나지막한 건물들이 주를 이뤘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걸었다.


주변 대로가 마치 서울의 광화문 주변 거리를 걷는 것처럼 쾌적하고 도로가 널찍널찍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끝이 안 보이는 흰색의 높은 담벼락이 보였고 그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길래 주변 경찰에게 물어보니 그곳이 바로 태국의 왕궁이었다.


왕궁의 부지는 규모가 정말 크고 넓고.또 화려하다. 덥지만 않으면 천천히 자세하게 둘러보면 참 좋을 것 같지만 태국에서의 더위는 그냥 받아들이자.


방콕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 방콕 왕궁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표를 끊고 들어가 봤다. 왕궁 내부의 건물들이 어찌나 웅장하고 화려하던지 구경하는 내내 눈이 아주 즐거웠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어디를 가든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이었기에 땀이 어찌나 많이 흐르던지 무더위에 현기증까지 났다.


태국 왕실 문화를 엿볼 수 있은 왕궁


날이 화창해서 좋긴 했으나 그만큼 강렬한 태양빛에 그대로 노출되다 보니 몹시 덥고 피로감이 배가 됐다. 그렇게 땡볕 속에서 한 시간을 넘게 구경한 후 도망치듯  그 왕궁을 빠져나왔다. 다음 일정은 둘째치고 최대한 빨리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 그늘에 앉아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것이 급선무였다. 정말 어찌나 햇살이 뜨겁던지 대단한 더위였다.



더위를 먹은 사람처럼 온몸은 늘어지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오후 내내 걷다가는 길바닥에 쓰러지겠다 싶어서 천천히 왕궁 주변을 걸으며 구경하다 호텔로 돌아갔다. 람부뜨리의 호텔 주변 노상에서 파는 시원한 망고 슬러시를 한 잔 마시며 또 길바닥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이제 또 뭘 하고 놀지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앉은 상태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구경했다. 그런데 그게 참 재미있다.


대충 눈짐작만으로도 다양한 나라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 죄다 태국의 무더위에 인상을 찡그리고 걷는 것이 다들 지쳐 보였다. 가만히 앉아 내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여행객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크나큰 여행 배낭을 메고 걷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배낭 색깔, 그들의 여행 복장, 그들이 신은 신발과 그들의 헤어스타일 등 그들의 여행 패션을 구경하는 것 또한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놀이를 1시간 동안이나 했다. 여행이 뭐 별건가... 여행에서 그냥 내가 하는 행위로 인해서 재미를 느낀다면 그게 바로 여행의 재미 아니던가!




별 특별한 것 없이 그렇게 놀다 보니 시간은 금세 오후 5시가 되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하늘이 흐려지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당연히 호텔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틀어 놓고 군것질을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마련이지만 나는 호텔 옆 편의점에서 우비를 하나 샀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비를 맞으며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 우비를 입고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처럼 우비를 입고 걷는 사람들이 꾀나 많이 보였다. 그래서 더 뻘쭘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이 극강의 뻘쭘함을 어찌하리오..


그리고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 야경으로 유명한 '왓 아룬 새벽사원'이 카오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구글 지도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신고 비 오는 거리를 3km를 걷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짓이었다. 그래도 비바람을 맞으며... 빗물에 잠긴 도로를 첨벙첨벙 거리며 걷는 게 또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왕아룬' 뷰로 유명해진 곳~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우비에 슬리퍼를 신고 그 레스토랑에 입장했는데 나는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레스토랑의 풍경은 이랬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남녀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었으며, 특히 한국 여성 여행객들은 한껏 멋을 내고 와서 자리에 앉아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던 있었다.


순간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니.. 

마치 나 자신이 비렁뱅이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순간의 창피함은 무시한 채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짜오프라야 강이 바로 보이는 전망 좋은 좌석에 앉아 피자 한판과 콜라를 주문했다.


우비 입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여행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막상 자리에 앉으니 그 엄청난 창피함은 스르륵 사라지고 강 건너 보이는 왓 아룬 사원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레스토랑은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방콕에 여행 오기 전부터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는 유명한 곳곳이었다.


'왕아룬'의 아름다운 야경
창피해도 기념가진은 찍어줘야 후회가 없다!태국에 와서 면도를 한번도 안했더니 몰골이 더욱 비렁뱅이처럼 보였다.


어쨌든 허기진 상태에서 먹으니 당연히 피자도 맛있고 풍경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그 레스토랑에서 내 패션이 1등인 것 같아 더 뿌듯했던 날이었다.ㅎ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도저히 다시 걸어서는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걷다가 마주친 뚝뚝이를 타고 호텔까지 왔다. 오면서 낮에 갔었던 왕궁 옆을 지나는데 밤에 보니 낮과는 또 다르게 상당히 멋져 보였다.


기사님이 음악을 크게 틀어주셔서 아주 엉덩이 들썩거리게 신나는 분위기로 끝내주게 내달리며 호텔까지 질주!!


무계획의 하루였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보낸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았다. 비 내리는 밤 뚝뚝이를 타고 오는데 바람은 또 어찌나 시원하던지~ 주변의 밤 풍경은 또 어찌나 이쁘던지~ 오늘 하루는 합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룽 '카오산로드'~ 이제부터가 진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