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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헨 Mar 23. 2024

저는 고객센터에 다닙니다

3. Supervisor.

“ 야, 니가 뭔데 안된대. 무조건 다 되게 해야 하는게 고객에 대한 예의지.

웃기지 말고 다 나와. 일단 네가 안되면 팀장부터 바꿔봐. 너랑 말하기 싫어. “


레퍼토리처럼 반복되는 상급자 통화 요청건은 90%이상 같은 이유이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들어주지 않아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고객들,

혹은 통화하던 상담직원이 불만인 고객들,

또는,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자신은 팀장과만 통화를 해야 하는 급이 되는 사람이라며

무조건 상급자 통화를 요청하는 고객들도 간혹 있다.


그 상급자 통화에 소환되는 1차 중간 관리자들 , 슈퍼바이저.

소위 말하는 운영팀장들이다.

이 팀장들은 12-13명정도 되는 팀을 맡아 팀원들의 민원고객과 팀원들의 실적을 책임진다.

9시에 로그인을 했는지, 오늘 어떤 업무처리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

8시부터 출근하여  업무를 시작하는 이들은, 아마 센터 내에서 가장 분주하고 바지런한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물론 센터에는 주춧돌이 되는 상담사가 있어야 센터가 돌아가지만,

이 슈퍼바이저들이 없으면 민원해결도 실적관리도 아무것도 되지 않으니 이들이 기둥역할을 담당하고 있달까.


필드 실무의 심장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그들도 대부분 상담사 과정을 거쳐서 승급이 된다.

길던 짧던 상담사 과정을 거쳐본지라 팀원들의 마음과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기꺼이 그들의 조력자가 되려 하는것이 슈퍼바이저들이다.

센터를 운영하며 만난 슈퍼바이저들도 수십명에 달하지만, 역시 이들 또한 사연없는 이가 없었으니..

대부분의 운영팀장들은 점심을 제때 챙기지 않고 일을 하거나, 퇴근시간이 뭔데? 하며 일을 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니, 별일이 아닌데도 운영팀장에게 인격적인 모독이 가득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고객들을 보면

고객들의 진짜 얼굴이 궁금해진다.

- 너네 엄마가 너 이렇게 무능한거 알고 있냐? 그러니 그런일 하고 있지.

이런 말을 듣고도 팀원들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운영슈바들의 녹취를 듣다가 눈물이 난적이 있었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에 대한 구분은 분명히 있을것이나,

노비제처럼 사람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귀천을 따지는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모든 근로자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예전 근무했던 D기업의 리조트와 호텔 인포데스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당시 유학을 다녀와서 부회장 직을 수행하기 직전이었던 부대표님의 지시사항으로,

<저희 직원들은 고객님께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대신 훌륭한 서비스로 보답할 예정이니 불편한 점은 담당 직원에게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인포에 와서, 직원들에게 수모를 주고 무릎을 꿇으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있었다는 이야기 아닐까.

당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우리는 모두  환호했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으나, 그런 식으로라도 내 직원을 보호해주고 싶으셨던 부대표님은 멋저브렀음.

얼마전 <눈물의 여왕>에서 갑질하는 고객에게 카운터를 날리는 김지원의 모습을 보며 그 부대표님이 오버랩 되었달까.  

많이 변한 세상이지만, 여전히 서비스직을 수행하는 모든 직원들은 크고 작은 갑의 요구사항에 어려운 날이 많은건 사실이다.


갑과 을은 <도깨비>의 은탁이와 김신처럼만 아름답게 존재하면 안되는걸까?

“ 을은 매년 첫눈 오는 날에 갑이 소환하면 응한다. 왜냐하면 갑이 기다릴것이기 때문이다. ”

음… 갑이 첫눈 오는 날 소환하면 곤란하다..

첫눈 오는 날은 고객이 전화를 많이 하거든….


- 다른 도움 드릴 사항은 없으실까요? 오늘도 행복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000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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