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엄마가 안내해드릴 예정이예요.”
-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조치를 시행하고 있사오니 유선 연락 시 고객응대 근로자에게 반말, 욕설, 폭언 등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엄마가 안내해드릴 예정이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ARS에서 흘러나오는 위의 멘트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 직원에게 욕하면 안되는구만?
아, 직원이 아기엄마구만?
이런 생각 보다는
”시끄럽고 빨리 연결해 무슨 서론이 이렇게 길어!!“
이런 불만이 먼저 차오르리라.
업계에서 십수년 넘게 종사했지만, 정책이 바뀌거나 프로세스가 바뀌면 운영관리자들은 몹시 분주하다. 법이 바뀌고 뭔가 준수할 것들이 생기고, 또 이걸 현장에 적용하고 하는 일은 생각보다 신속하기가 쉽지 않다.
산업안전 보건법의 안내멘트를 넣어야 할때도 의견은 분분했다. 현업과 거리가 먼 으르신들은 대충 알아서 넣으란 식이었고 센터에서는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고객들 불만이 쌓일거고 등등등…
필수멘트만 간결하게 조사까지 붙였다 떼어가며 ARS의 멘트 시간을 재보고, 1초라도 줄이기 위한 멘트 속도를 또 재보고 하는 촌극 끝에 대부분의 센터들은 위와같은 ARS 멘트를 만들었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때문에 고객들은 욕설과 폭언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끊었답니다~
…의 결말이면 참 좋겠으나, 언제나 모든 삶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는거니까.
고객이 대기하게 되는 시간에 듣게 되는 ARS 기계적인 안내멘트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응대할 예정이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시작된 것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간접적으로 상기시키고 매너있는 문의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으나, 그만큼 고객센터의 직원들은 서비스마인드를 지키고 만족스러운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고객의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격무속에 시달린다.
가끔, 감정노동자들의 산재 소식이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릴때면 아침에 출근해서 밝게 인사해주는 직원들의 얼굴이 반갑고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는데, 어쩌면 이 전쟁같은 센터의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십수년이 되는 동안 나는 이들의 다정함에 기대어 성장하며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 되었다고 감히 단정해 보기도.
요즘 고객센터 직원의 평균연령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이다.
3D 업무중의 하나라는 고객센터 서비스직을 기피하는 MZ는 점점 늘고, 기경력자들이 위주가 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평균 연령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 , 알아야 하는 것이 광범위 하니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줄 몰랐다고 못하겠다며 빠르게 포기하는 인원들도 꽤 있다.
AI가 일상화 되고 4차 산업에 고사할 직업 TOP10 중 고객센터 상담사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고객문의의 대부분이 자동응답 가능한 챗봇이나 챗GPT로 해결할수 있으니 인건비가 들지 않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기업의 수익도 훨씬 극대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우리가 흔히 가는 맥도날드나 무인카페등의 키오스크에서 허둥대거나 결국 주문을 포기하는 어르신들을 가끔 마주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챗봇과 인공지능 채팅 서비스를 능숙하게 이용할 수는 없다. 앞으로 고령화 되는 사회에서 점점 발전하는 첨단 서비스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100% 일까? 물론 고객센터의 유선상 인입되는 주문의층은 2-30대보다 앱과 홈페이지를 이용하기 어려운 60대 이상의 고객들이 많은 편이다.
덧붙이자면,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 직종이 사회학자들이 예측하는 것보다 오래 살아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직원들에게 CS교육을 하거나 신입교육의 첫 시간에 내가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마음을 지켜야 하고, 다른 이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니까요."
헤드셋을 끼고 고객들의 문의에 답하는 일을 하러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
아이를 키우고, 학비를 마련하고, 부모님을 부양하며 매일 분주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열심히 겪어 내는 직원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곳.
- 다른 문의사항은 없으십니까? 지금까지 저는 000 이었습니다.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나는 고객센터에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