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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헨 Apr 07. 2024

저는 고객센터에 다닙니다.

6.  제가 처음이라서요. 죄송합니다.  

- 눈이 안보이는 사람이 등불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물었지요.

"눈이 안보이는데 왜 등불을 켜고 오시는 건가요?"

"이 등불은 눈이 보이는 분들이 저와 부딪히지 마시라고 켠 등불입니다." 


배려라는 컨텐츠들 어딘가에 있는 글귀이다. 

상담의 기초적인 CS마인드는 몇가지가 픽스 되어 있는데, 

1. 경청 : 고객의 말에 귀기울여 들을 것

2. 공감 : 고객의 상황을 공감하여 해결책을 찾고, 

3. 양해 : 현재 처리할 수 없는 업무가 있다면 충분히 양해를 구하고, 

4. 배려 : 고객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배려를 통해 최선의 방법을 제시하는, 서비스.


이 네가지의 마인드는 기본적인 상담품질을 준수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들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때 가져야 하는 자세들과, 거의 흡사하게 닮아있는것도 같다. 

조직의 상하이든, 수평이든, 

그 어디에서도 위의 4가지가 서로 잘 이루어진다면 마음을 다칠일도 없을텐데.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 처음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두 <처음> 을 겪었을때의 그 느낌.

뭔가... 험한것이 나오는...(??) 실수의 느낌.. 

직원들을 채용할때, 사회 생활이 없는 사회 초년생들은 아무래도 꺼리게 된다. 

(그럼 그들은 어딜 가나요..라는 말을 얼마전에 들었다. 맞는 말이다. ) 

고객센터의 특성상, 서류를 발급받아 보내야 하는 것도 있고 

은행 이체일이라던가 카드 결제, 취소 등등 이런걸 좀 해본 '으른'들이 이해도  빠르고 고객에게 설명을 해줄때 좀더 용이한 것은 사실이니,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경력직이거나, 사회생활을 조금은 해본 사람들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건 사실이기도 하다. 

20대 초반 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 지원을 해서 잘 정착하는 경우도 간간히 있기는 하지만 등본과 초본의 차이를 고객에게 설명하지 못한다거나 서류를 받아야 하는 기준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류를 잘못 받거나 하는 기본적인 일이 왕왕 있어서 초년생들의 정착은 그리 녹록치는 않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만약 우리 첫째가 와서 이 일을 한다면 할 수 있을까?

...신용카드도 안만들어본 애가 매출 취소나 환입을 알 수는 없을테니

또래들은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반화의 오류. 

그래서 나는 채용할때 사회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다소 망설이게 된다. 


몇년전에 군대를 다녀와서 제대 5일만에 인터뷰를 보러 온 청년이 있었다. 

- 입대 전에라도 서비스직은 종사해보신 경험이 있나요?

- 아니요! 없습니다!

- 그렇게 크게 말씀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유선서비스 업무를 지원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 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여 가장 잘 할 수 있을것 같아 지원했습니다!

(...친절하다고 잘할 수 있는건 아닌 일이랍니다 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해서 사람이 한 말을 받아 쳐 줄 만큼 잘못말한건 아니니 패스.)

군기가 안빠진 말투와 경직된 태도, 사회 생활 경력이 전무하다시피한 청년의 이제 시작된 시간들이 한참 고민 되었지만, 인터뷰 내내 자신감 넘치는 청년을 채용합격자 명단에 포함시키고 4주간의 교육기간 동안 그 아이를 면밀하게 지켜보았다. 

다행히 동기들과도 적응을 잘 하고, 업무도 그럭저럭 잘 배우고 있던 그 직윈의 첫번째 콜 수행날.

신입들이 첫 콜수행을 하는 날은, 스탭이나 지원리더가 원활하게 콜업무를 전산과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옆에서 올라운드로 지원한다. 직원의 경우에도 옆에 스탭들과 지원 리더들이 라운딩도 돌고, 옆에 앉아서 고객의 업무처리를 함께 돕고 있었다. 

첫번째 콜이 인입된 순간, 잔뜩 긴장했던 그 직원은 롤플레잉 강의때 수십번도 더 했을 첫인사를 어렵사리 꺼내어 고객에게 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립니까??" 


옆에 있던 일부의 리더들은 웃음을 참느라 어쩔줄 몰랐고, 함께 화면을 보고 있던 지원스태프도 황당함에 어쩔줄 몰랐다. 

다행히 고객은 큰 너털 웃음으로 넘어가 주셨는데, 그 직원은 2년 넘게 잘 적응하여 좋은 실적을 내고 센터에 여러 활력소가 되어주는 조직의 긍정적인 구성원으로 근무하다 이직했다. 처음 만난 고객이, 무슨 소리냐며 신입이냐며 면박을 주었거나 했다면 지속적인 적응이 쉬웠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고객의 배려가 어쩌면 그 직원이 시작했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던 건 아닐지. 


가끔,  신입직원들이 통화를 할때 빠르게 대답해주지 않고 머뭇거린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난처한 일을 겪는 경우가 꽤 있다. 

- 너 신입이지. 아오 답답해. 다른사람 바꿔.!! 

- 제가 처음이라서요.. .죄송합니다...  

물론.. 나도 고객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답답하고 짜증도 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어느 조직에서든 <처음> <신입> 인적이 있지 않았던가. 

못하는게 아니라, 조금 느리게 처리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이니

그런 <처음>인 이들에게도 시간을 조금쯤 할애해 주시는 여유도 가끔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려 본다. 


처음인 신입 직원들이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게 가르치고 연습시키고 

고객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 


나는 고객센터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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