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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2번째 회사 마지막 이야기

by 장서운

...10층, '문이 열립니다'

오후 1시 30분즈음 덜거덕 거리는 자동문이 열리고 나는 마지막인 내 자리로 향했다.


회사엔 경원지원팀의 경리 한분만 계시고 나머지는 모두 휴가 였다.

"식사 혼자 하셨어요?"

"네에 어제 술 먹어서 오늘 해장하려고 콩비지 찌개집 갔는데 맛이 없었네요"


그리고 나는 다시 회사 내부를 둘러봤다.

내자리에 있는 노트북과 키보드가 보였고 옆자리엔 6개월이 훌쩍 넘은 커피가 아직 동료의 자리에 그대로 놓아져있었고 모니터 스티커 등등이 있었다.


마지막이었다.

내가 쓰던 맥북은 초기화를 시켯고 집에서 가져온 내 노트북을 갖고 부트캠프의 PR을 작성하기 위해 내 노트북도 켰다. ZEP에서는 당연히 과제 얘기로 시끌벅적 얘기가 오갔고 나는 느즈막히 내 PR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6일 입사했던 나의 회사 업무가 2025년 5월 3일을 마지막업무로 끝이 났다.

그 동안 나에게는 정확히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들을 깨달았고 경고도 몇번 받앗음에도 어떻게든 해나가겠지라는 오만한 생각을 갖고 회사에서의 업무를 이어갔다가 이지경 까지 왔던 것이다.


병원에서 진행한 풀배터리검사에선 나에게 ADHD라는 진단을 내렸고 사고회로를 논리적으로 기억하는데 있어선 '경계선'수준으로 수준이 많이 낮다는 판단을 내렸다. 회의 시간마다 세부적인 내용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흐름만 이해하다가 끊기는, 다들 "코끼리"를 얘기하는데 나혼자 불쑥 "기린"얘기를 하는 이유를 33살이나 먹고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좋지 않았다. 내가 어렷을때부터 했던 이상 행동들이 이제 와서야 이유가 밝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동안 내가 힘들어 했던 부분들이 이것 때문일까 라는 생각 또한 들게 했다.


내가 했던 모든 연애나 직장생활의 마침표에도 내 '경계선' 수준의 기억력도 한몫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되도 안되는 기억력을 갖고 나는 고집을 부렸었고 그것이 내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시간은 단 3시간이엇고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를 표현해주지는 않았겠지만 A4용지 6장이 내가 문제를 갖고있다는 법적인 효력을 지니게끔 해주었다.


힘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고 나는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사람들을 재밌게 해줘서 웃겨주거나 내가하는 말들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것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것 처럼 느껴졋었는데 약을 먹고 상담을 진행하고 나니 내가 행했던 행동들이 점차 생각이 났다.


회사에선 오후 2시쯤 혼자 법카를 받고 매봉역 근처 맛집 `코시`라는 우동집에서 돈까스를 하나 먹었다. 회사에서 마지막이차 처음으로 혼자 밖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20분도 되지 않는 식사시간이엇고 식사를 마치고 난후 혼자 터벅터벅 회사로 다시 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몇천, 몇만 가지의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음식점, 놀이터, 길, 출근길에 매일 보던 강아지, 경비아저씨, 모두 오늘의 마지막이 겠구나 생각했다.

나름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들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냐 라고 물어본다면 그렇진 않다고 얘기해 줄 것 같았다. 내 인내심이라는 기질은 그릇 종지만큼이나 작은 그릇이었고 누군가를 붙잡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물어볼 여유조차 머릿카락 한톨만큼의 넓이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오후 4시 30분 가방을 메고 회사를 나섰다. 부트캠프 동료들과 클라이밍 약속이 있었다. 항상 회사 입구를 지키고 있던 옆 회사 HR매니저분에게 마지막 수고하란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 튼튼영어빌딩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많은 것을 배웠고 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정도로 넘치는 팀과 다시는 일해볼 기회는 오지 않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지만 나는 지금 회사에 걸맞는 못습을 보여주지 못햇고 실력적인 면,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면, 업무적인 면에 있어서 다소 부족하다는 의견과 내 생각이 일치한 결과 마지막 이라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 같다.


마지막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마지막은 내가 결정할수 있는 상황들이 몇 없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고 과거의 나날들에 마지막은 항상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것같다.

튼튼영어 빌딩을 나왔고, 빌딩을 한번 처다보았다. 내 손을 한번 바라보고 뒤 돌아보지 않고 양재역으로 향했다.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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