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1931년, 맨유는 2부리그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해 2부리그 개막전에는 고작 3,500여 명의 관중만이 경기장을 찾았을 뿐이었다. 대공황.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한 팬들에게 축구 경기를 관람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구단은 1부로의 승격은커녕 팀 유지조차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빚은 늘어가고, 선수와 직원들을 위한 월급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 게다가 당시 맨유의 구단주는 존 헨리 데이비스라는 인물이었는데, 25년간 구단을 후원하다가 돌연 사망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인 그때, 갑작스레 등장한 운명의 구원자가 바로 맨체스터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 제임스 W. 깁슨이다.
깁슨의 집안 어른들은 죄다 사업가였다. 14세, 비교적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었으나 그에게도 사업가로서의 DNA는 분명 존재했다. 그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다. 섬유 산업이 호황이던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과 계약을 맺어 그들을 위한 제복을 제작하면서 기업가로서의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그의 사업은 여러 분야로 줄기차게 뻗어나갔다. 사실 깁슨이 원래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어서 맨유라는 구단을 인수했다는 식의 사연은 전해진 바가 없지만, 그가 구단을 인수한 이후부터 맨유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깁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팬들의 발걸음을 다시 그들의 홈구장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물론 사업가로서 팬들로 인한 티켓 수익을 중요하게 여겼겠으나 생각해보면 팬들이 없는 구단은 아무 의미가 없기도 하다. 그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팬들도 경기장에 편히 찾아올 수 있도록 인근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스타디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건설했다. 철도 회사를 설득해 맨체스터를 관통하는 기차가 올드 트래퍼드에 정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어 깁슨은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타 팀 선수를 영입할 여윳돈이 없었으므로 같은 지역 내 유능한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 주력하고자 한 것. 이는 결과적으로 뛰어난 선수를 저렴한 비용으로 발굴해내는 구단만의 정체성이 되었고, 단순히 금전적 이익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선수들의 팀에 대한 자부심, 서포터들의 위대한 충성심 등으로도 이어졌다.
해체의 위기까지 겪었으나 제임스 깁슨의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 행보에 구단은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다. 하나,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1941년 3월 11일, 공습 사이렌이 영국의 대표 공업도시 맨체스터의 밤하늘을 뒤덮었다. 독일 나치 공군인 루프트바페가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블리츠 공습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엔 포탄이 떨어졌고 이건 깁슨의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때, 깁슨은 역시나 상황을 재빠르게 극복해낸다. 같은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에서 맨유의 홈경기를 같이 개최할 수 있도록 설득에 나섰고,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 올드 트래퍼드 재건축 승인을 얻어냈던 것.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으나 결국 맨유는 다시 새로운 홈구장을 건설해냈다. 그리고 깁슨은 맷 버스비라는 유능한 감독을 ―그것도 라이벌팀 리버풀에서― 스카우트하여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몰두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에 부응하듯 버스비는 팀을 리그 최고 수준으로 키워낸다.
이 글에서 가장 슬픈 사연이 있다면 1951년 9월, 깁슨이 뇌졸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 직후 ―정말 단 몇 달 뒤― 맨유는 40여 년 만에 리그 우승 타이틀을 차지한다. 그가 보았다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을까.
이후 깁슨이 뿌린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나 유러피언 컵, FA 컵, 수 차례 리그 우승으로 뻗어나갔으며 다들 알다시피 맨유는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 되었다. 매번 찾아온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을 향한 튼튼한 기반을 닦아 낸 위대한 개척자, 제임스 깁슨. 그의 ‘구원’에 대하여 적어도 맨유 팬들이라면 오래오래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맨유의 역사를 통해 우린 우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성공한 사업가에게도 위기는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아니, 그들은 어쩌면 스스로 그 어둠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인지도. 왜냐고? 빛은, 본디 어둠이 있어야만 정확히 인지될 수 있는 법이니까.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는 어떤 경기장에서도 조명을 켜지 않잖아?
우린 가끔 너무 눈부신 빛만을 쫓는 경향이 있다. 그 빛은 우릴 비추다 못해 아예 하얗게 지워버릴 것이다. 적당한 어둠은 우리에게 늘 필요한 법이고, 그 어둠이 존재해야만 우리가 능동적으로 새로운 밝은 빛깔을 칠해낼 수 있음을 기억하자. 어둠을 뚫고 나온 빛이, 더 찬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