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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Nov 13. 2024

학폭 가해자와 친해지는 법

<교사의 단어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마음


명.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인류 보편적으로 이상에 가까운 인간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존재, 어디에도 없다. 그건, 우리의 지난 과거가 항상 우리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백 퍼센트 완전무결한 삶을 살았던 이가 있을 리 없지. 그럼에도 방법이 뭘까, 하고 떠올렸을 때 곧장 내게 전달된 메시지는 ‘어쨌든 방법은 없다’란 것이었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기억'은 절대 소멸되는 게 아니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던 상처, 실수로 내뱉은 말 한마디, 무의식중에 법과 질서를 위반했던 장면들만이 떠오를 뿐. 그렇다고 과거에만 머물며 그때와 현재를 일치시키는 미련한 짓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어떤 몸짓이 있어야만, 우린 제대로 살아낼 수 있다. 이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허호탕군은 학폭 가해자였다. 그 피해자는 우리 반 학생이었고, 피해자 부모는 본인들이 전학을 가겠으니 학교 차원에서 이를 위해 노력해달란 부탁을 했다. 일반적으로는 가해자가 학교를 떠나고 피해자가 남아있게 되는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피해자 측이 원하는 대로 되었고 이듬해, 학폭 가해자인 허호탕군의 담임이 되었다. 

첫 상담에서, ‘학폭’이란 무거운 단어를 차마 꺼내지는 못했다. 아이의 눈빛에서 대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으므로. 그도 그럴 것이 허호탕군에게 난 한때 ‘피해자의 담임’이었다. 본인이 가해자인 사건에서 적대적 관계에 있던 사람과 과연 한배를 탈 수 있을까. 적절한 라포르 rapport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상대의 내면에 깊숙이 파고들고자 한다는 건 똑똑, 문을 두들기는 게 아니라 강제로 문을 부수고 무단침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인내가,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했다.     


싸워 이기는 행위도 물론 쉽지 않겠으나 짝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역시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보기보다 호탕군이 가진 마음의 벽은 높고 단단했기에. 어딘가에 숨어 있을 열쇠 구멍을 찾아 헤매다 훌쩍 1년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냥 지나간 것은 아니고, 나름의 노력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상담 횟수도 다른 친구보다 더 많았고, 방학 땐 손수 자필 편지도 썼으며, 부모님께도 종종 연락드려 학교에서 성실히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관계가 개선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한 건 이런 거였다. 마음을 터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 고민을 가감 없이 내어놓을 수 있는 사이, 과거의 아픔을 마음껏 공유할 수 있는 사이, 따위들. 그럼에도 호탕군은 내게 말 할 때 한 문장 이상 질질 끄는 법이 없었다. 그냥 딱 할 말만 하는 사이였달까. 웃으며, 혹은 울먹이며 나누는 대화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숱한 학생들을 겪으며 상담 기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말았다. 호탕군은,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내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돌림병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직후의 어느 날, 만이천 원에 네 캔 하는 편의점 맥주를 사 들고 터덜터덜 걷는 중이었다. 뒤에서 빵빵,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인도로 올라섰는데 갑자기 SUV 한 대가 내 옆에 정차하는 게 아닌가. 뭔 시비를 걸려고 하나 싶어 ―센 척하려고― 잔뜩 인상을 쓰고 째려보았는데 창문을 내리고 쌤, 하고 외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호탕군의 동창이자 성격 좋기로 유명했던 박첼시군(이 친구는 첼시 FC의 열렬한 팬이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엔 첼시군의 절친 황한화군(이 친구는 한화 이글스 팬)도 함께. 둘은 갑자기 차에서 내리더니 과할 정도로 내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알고 보니 둘은 전역한 지 딱 이틀째 되는 날을 보내는 중. 그래, 그땐 뭐든 다 기쁘지. 하여간에 두 친구와 그간의 사연과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데 첼시군 왈,     


“호탕이는요? 걔는 연락 그래도 좀 자주 하지 않았어요?”

“걔가? 걘 문자 한 통 보낸 적이 없거든!”     


잊었던 이름이 언급되자 그간의 서러움이 밀려올 참이었다. 그런데 첼시군은 의아하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진짜요? 걔가 쌤 얘기 젤 많이 하는데?”     


내 얘기를 많이 했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첼시군의 말에 따르면 호탕군은 아주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했다. 많이 밝아졌고, 학창 시절 사고 쳤던 걸 무척이나 후회하며, 지금은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지런히 잘 지내고 있다고. 그리고 그 대화의 끝자락에서, 첼시군은 심금을 울리는 한 마디를 남겼다.     


“호탕이가 쌤 덕분에 사람 된 거라고 맨날 얘기하고 다녀요.”     


그랬구나. 마음을 닫아놓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아주 천천히 열렸던 것이고, 그저 티를 내지 않았던 것뿐이구나.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 시절의 노고가 비로소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첼시군과 한화군은 끝까지 거부하는 내 말을 거역하고 날 굳이 카메라 앵글 속에 집어넣었고, 그렇게 셀카까지 찍은 뒤 둘은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나의 몸은, 그들이 탄 SUV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실제로는 그 정돈 아니었다) 마음이 훨훨 깃털처럼 가벼워졌달까. 맥주캔이 들어 있는 걸 망각한 채 마구잡이로 달리는 바람에 뒤늦게 거품 폭탄을 맞긴 했지만 그래도 뭐, 그게 대수인가.     


우린 줄곧 확인한다. 똑똑, 아무리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음을.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강제로 문을 부수고 무단침입하려고만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알려준답시고 자꾸만 잔소리를 늘어놓고 화를 내며 귀에 박히도록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바로, 무단침입이다. 그것이 여느 학교폭력보다 더 잔인한 행위임을 가끔 잊고 지낼 때가 있다.     


아이들을 대하는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그저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결과는 곧장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들은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길을 내어줄 것이다. 그리하여 어른들에겐 시간이, 인내가,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나긋나긋,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두들기다 보면 언젠간, 반드시 열릴 것임을 믿어보자.    

 

마음은, 그 어떤 언어보다 힘이 센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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