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축구란 스포츠가 대체 뭐길래 사람들을 이렇게도 자꾸 웃기고, 울리는 걸까. 지구인 모두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축구란 존재가 있기에 우린 결코 끝까지 기계에 잠식당하거나 전쟁 따위에 매몰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닌 상생과 평화라는 걸, 다들 알고 있겠지?
축구를 모르는 이들도 메시, 호날두는 안다. 반면 축구를 좋아하고 열성적인 팬들에게도 터무니없이 낯선 선수도 많다. 어쩌면 그 낯섦의 영역에 속해 있을 이름 하나를 오늘 당신께 꺼내 보이려 한다. 오디온 이갈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그도, 한 땐 맨유의 자랑스러운 일원이었다. 그를 꼭 소개하고 싶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태어난 이갈로는 노르웨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명문 우디네세 칼초로 이적했고, 여러 클럽에서 임대 생활을 이어가다 잉글랜드의 왓퍼드 FC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블랙풀 FC와의 경기에서 무려 네 골을 몰아치는 등 괄목할만한 기록을 남기며 그가 잉글랜드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출중한 기량을 지녔음을 증명했다.
아쉽게도 그는 이후 중국 무대로 건너가지만 2020년 1월 31일, 3년 만에 다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한다. 그리고 그의 소속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당시 최전방 공격수 자원이 부족했던 맨유에서 6개월 단기 임대로 그를 영입했던 것. 무려 50%의 연봉 삭감까지도 감수하며 오직 맨유 이적만을 간절히 원했던 이갈로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맨유를 동경해왔음을 밝혔다.
“맨유의 유니폼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수의 이름을 새길 수 없었다. 이름을 넣으려면 돈을 내야 했는데, 그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이갈로는 맨유의 전설적인 공격수 앤디 콜, 드와이트 요크의 활약을 보며 자신도 맨유 선수가 되어 그라운드를 누비는 꿈을 꿨으며, 나이지리아에서 맨유 경기를 보기 위해 돈을 내고 TV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던 경험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맨유를 위해 뛰고 있다. 정말 더욱 대단하고, 가슴 벅찬 순간이다.”
비로소 이갈로의 오랜 꿈이 이뤄졌으나 그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2020년 2월 28일, 유로파리그 32강 2차전 클럽 브뤼헤 KV와의 경기에서 맨유 데뷔골을 성공시킨 이갈로는 세레모니를 할 때 붉은색 유니폼을 들어 누나 메리의 사진과 그녀가 고인이 된 날짜가 새겨진 티셔츠를 보여 주었다.
“누나는 항상 내가 맨유로 가길 기도했다. 누나가 하늘에서 내가 맨유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리라 생각한다. 내 경력이 끝날 때까지 모든 골은 누나에게 바칠 것이다. 누나도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도와줄 것이다.”
꿈이 현실이 된 시간, 그 꿈을 함께 응원해준 소중한 이와 성취의 순간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울까. 반대로 사랑하는 이에게 성취의 순간을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비록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함께 하지 못하지만 이갈로는 맨유 생활 내내 열과 성을 다해 승리를 좇는 투사처럼 플레이했다. 언제나 그를 바라보고 있을 누이에게 자랑스러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이갈로가 합류한 뒤 갑작스레 전 세계는 돌림병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지구상에서 축구를 비롯해 모든 스포츠는 중단되었다. 결국 이갈로의 임대 기간이 연장되기는 했으나 이후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하고 사우디 리그로 이적하게 된다. 그렇지만 맨유 팬들에게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아주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소속 클럽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선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어디에 있든 다들 그의 성공을 기원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러하다.
어쨌거나, 맨유가 자신의 드림 클럽임을 밝히는 세계 곳곳의 유망한 선수들이 다들 자기 꿈을 이뤄내길 바란다. 그러한 성취가 본보기가 되어 오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세상의 일원들이 늘어나길, 기왕이면 그 꿈들이 고작 개인의 부와 명예를 위한 것에 머물지 않고 인류 행복에 이바지하는 아름답고 찬란한 글자들로 채워지길, 물론, 나도 그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