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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Oct 03. 2024

해줘 축구는 인제 그만해줘

어쨌거나, 맨유

해줘 축구는 인제 그만해줘

-솔셰르텐 하흐클린스만 그리고 홍명보까지          



Do-This-For-Me Football. 영국의 ‘디 애슬래틱’이라는 신문사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전술을 두고 사용한 표현이다. 상술하자면 감독이 자신의 전술적 역량을 발휘해 승리를 쟁취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특정 선수 한두 명의 기량에만 의존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 ‘해줘 축구’. 고교 시절, 한때 스포츠 기자를 꿈꿨던 나로선 이런 기자들의 센스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얼마 전에는 이런 기사도 있었다. ‘한국은 맨유, 일본은 맨시티’라는 표제였는데 우리나라 축구는 늘 손흥민, 이강인 등 슈퍼스타에게만 의존하는 반면 일본 축구는 EPL 최고 구단인 맨시티처럼 하나의 팀으로 완성된 플레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 참,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 ‘클린스만-홍명보’라는 ‘해줘 축구’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처럼 맨유에도 ‘솔셰르-텐 하흐’라는 아주 환상적인 감독 라인이 구축되어 있으니까. 자, 대한민국의 해줘 축구는 이미 다들 잘 알고 있을 테니 여러분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대한 해줘 축구’에 관해 소개합니다!     


올레 군나르 솔셰르. 노르웨이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특히 선수 시절 맨유에서만 366경기에 출전하여 총 126골을 넣었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전설적 인물이다. 조제 모리뉴 감독이 경질된 후 맨유의 임시 감독직을 맡아 19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당시 ‘퍼거슨의 재림’이란 말을 들었을 정도로 아주 상큼한 출발을 선보였던 그였다. 그런데 21-22시즌, 그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급격히 퇴보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전 시즌 리그를 3위로 마치며 팬들이 우승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게 해주었으나 정말,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와장창 무너졌다. 다시 친정팀으로 복귀한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감독이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브루노 페르난데스와 같은 한두 명 선수에게 과도할 정도로 의존하는 경향의 플레이를 선보였던 것. 그러다 보니 경기마다 똑같은 베스트 11만을 신뢰하여 상대하는 팀에서는 어떤 선수를 어떻게 막으면 되는지가 뻔히 보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결국 경질되었고, 팀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다.     


에릭 텐 하흐. 맨유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거라 기대하게 만든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AFC 아약스를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이끌었던 경험을 높게 평가받았다. 아니 그런데, 이 사람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특? 특별? 뭐가 뭔지 모르겠으나 과도할 정도로 본인이 과거 소속팀에서 지도했던 제자들을 영입하는데 열을 쏟는다. 자기 입맛에 맞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과해도 너무 과하다. 과하다 못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과거 제자 영입에 막대한 돈을 쓴다. 자, 그렇게 돈을 썼으면 감독으로서 자기 색깔을 아주 뚜렷하게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대체, 왜, 지금 맨유엔 아무런 색깔도 없는 것인지……. 23-24시즌은 맨유 역대 최악의 시즌 중 하나였다. 텐 하흐 체제에서 전술은 오직 멀리멀리 공을 뻥뻥 차내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최소 득점, 최다 실점, 최저 승점 등 불명예 기록을 거듭했다. 물론 항간에는 ‘부상 선수가 너무 많아 그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었다’란 변명도 언급되지만, 그게 바로 ‘해줘 축구’이다. 특정 선수 몇 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 이가 없으면 잇몸, 잇몸이 없으면 몸통 박치기라도 해야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인데, 텐 하흐에게선 그 ‘역할’이란 게 보이질 않는다. 24-25시즌 개막 후 부상자가 거의 없음에도 한결같은 ‘무전술 운영’으로 연전연패를 기록하는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에릭 텐 하흐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웹사이트 갈무리.


‘해줘 축구’. 최근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에 홍명보 감독이 임명된 이후 다시금 떠오른 인터넷상의 밈이다. 이러한 ‘해줘 축구’를 하는 감독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난 잘했는데 선수들이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했다’란 식으로 모든 책임을 선수단에 돌리거나, 아예 경기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팬들의 상식에선 한참 어긋나는 발언을 한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도 ‘해줘 축구’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동의할 수 없다. 전술적으로 충분히, 우리 선수들이 후반전 30분을 남겨놓고는 완벽하게 잘했다고 생각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력이 엉망진창이었단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단순히 축구라는 스포츠에만 국한할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리더의 역할과 책임에 관해 생각해보자. 당신이 겪은 리더들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만난 이들은 스스로 책임을 지기보단 회피하려는 모습을 주로 보였다. ‘내가 책임질 테니……’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린, 대한민국 사람이니까!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유교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리더는 능력이나 책임감보단 나이나 경력으로 선발되는 경향이 강하다. 아주 쉽게 말하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리더’가 아니라, ‘리더이니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란 거꾸로 식 사고가 이뤄지는 것이다. 애초에 능력이 없음에도 나이와 경력으로 윗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후배나 부하직원들을 감싸 안아줄 포용력과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답은, 바뀌는 것뿐이다.     


어쨌거나, 맨유의 감독들도 자꾸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 선수들 탓, 잔디 탓, 일정 탓, 이러다 돌아가신 조상님 탓도 할 기세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참 리더다운 누군가가 맨유의 감독이 되어 다시금 부활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한다. 지구에 앞서 말한 엉터리 리더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충분히 믿고 의지할 든든한 버팀목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더불어 ‘나’라는 존재가 언젠가 리더가 된다면 타산지석, 반면교사의 자세로 같은 종류의 지구인이 되지 않도록 애쓰겠다는 다짐을 하려는데 잠깐,     

 

나 따위가 리더가 될 수 있긴 하려나? 아…… 일단 이 고민이 먼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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