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십 점 만점에 십 점’이라는 노래도 있고, 대부분의 시험 점수는 백 점이 만점이다. 십 단위의 숫자들은 완벽을 표현하는 숫자인 셈. 반면에 아홉이라는 숫자는 불완전을 표현하고 심지어는 불길하고 불안하다. 아홉수는 삼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 내가 딱 아홉수에 걸쳐 있는데 정말이지 삼재까진 아니더라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다짜고짜 말하는데 그래서 더더욱 축구는, 우리 삶의 희망이어야 한다.
루이스 판할 감독이 부임한 14-15시즌, 폭풍 영입이 이뤄지며 명가 재건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던 때이다. 그때 영입된 슈퍼스타 중 한 명은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형 미드필더 앙헬 디 마리아. 이미 여러 유명 구단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던 선수이기에 팬들의 기대는 아주 컸다. 하지만, 공격수 포지션에 너무도 많은 유명 선수들이 영입되면서 감독은 엉뚱하게도 디 마리아를 본래의 위치가 아닌 수비, 최전방 등의 자리에 시험적으로 배치했고 선수의 불만은 극심해졌다. 결국 시즌이 종료되자마자 자취를 감춰버린 앙헬 디 마리아. 훈련도 불참하고 한 시즌 만에 PSG로 이적한다. 물론 감독의 전술적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애초에 구단으로 복귀조차 하지 않은 선수의 탓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조제 모리뉴 감독 시절, 맨유 역대 최고 이적료로 프랑스 출신 미드필더 폴 포그바가 영입된다. 그는 원래도 맨유 유스 출신이었지만 계약 종료와 함께 팀을 떠나버렸던 말 그대로 ‘배신자’. 그런 선수를 다시 수천억을 주고 영입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놀라웠던 건 포그바의 활약이었다. 포그바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 정도로 맹활약했지만, 이상하게도 팀에 돌아오면 기량이 저하되고 부상에 시달렸다. 수비적 전술을 주로 사용하는 모리뉴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팀 구성원들을 선동하여 감독과의 마찰을 주도하기도 했다. 결국 모리뉴 감독은 경질되었고 포그바 역시 몇 년 뒤 다시 팀을 떠났다.
이후에도 팀 내 잡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솔셰르 감독이 경질되고 랄프 랑닉 감독이 부임했을 때 당시 주축이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감독에게 반기를 들었다. 랑닉 감독은 게겐 프레싱(압박 전술)의 창시자라 불릴 만큼 선수들의 활동량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이지만 호날두는 결코 부지런한 선수가 아니다. 물론 그의 경력과 기록을 보았을 때 세계 최고 선수라 불리기에 무리가 없지만, 팀을 생각했을 땐 그리 도움이 되는 선수가 아니었다. 호날두는 랑닉 이후 에릭 텐 하흐가 부임하고서도 계속해서 감독의 전술과 선수 기용을 비판했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자기 심경을 토로하다가 결국 상호 계약 해지가 이뤄졌다. 호날두 퇴단 이후 팀이 좀 더 잘 굴러갔던 걸 생각하면 감독만 비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텐 하흐 감독은 호날두에서 그치지 않고 제이든 산초라는 잉글랜드 출신 선수와도 마찰을 빚었다. 산초는 충분한 재능을 지닌 선수였지만 출전 시간에 대한 불만으로 감독과 갈등이 생겼고, 결국 다른 구단에 임대를 가는 형태로 여전히 팀을 떠나 있는 상태다. 물론 충분히 불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긴 했으나 항명 자체를 두둔할 수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단으로 팀 훈련에 불참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잘못된 행동이니까.
매체의 발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지는 축구 경기를 우리 집 안방에서도 손쉽게 시청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팀을 넘어 선수 개개인에 대한 팬덤이 확산되었고 팀보단 개인이 우선시되는 스포츠 문화까지도 생겼다. 물론 마케팅적 측면이나 여러 요소를 고민해야겠지만 여기선 분명하게 구성원으로서의 마음가짐에 관해 논하려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정치’란 것이다. 정치는 싸워서 이기는 논리여선 안 된다. 합심하여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방향으로 완성되어야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런 정치를 하는 이들은 없다. 정치의 본질은 변질되어 어찌해야 내가 이익을 취할 수 있는지의 논리로만 운영된다.
정치는 그저 개인의 신념일 뿐 어느 한쪽이 정답이 아니다. 게다가 ―마치 대한민국 정치판이 그러한 것처럼― 죄다 엉망진창이다! 선수들은 개인에게 손해가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이를 참지 못하고 항명을 하거나 공개적으로 감독을 비난한다. 자기 입장을 구성원들에게 동조시키며 아예 팀을 와해시키는 이들도 있고, 팀이 어떻게 굴러가든 훈련을 거부하는 나 몰라라 식의 행동도 보인다. 반대로 감독들은 감싸 안기기는커녕 독재자처럼 그들을 내치느라 바쁘다.
선수들이, 감독과 구단 수뇌부들이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개인이 얻는 것은 없으며 더불어 팀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팀이 없으면, 그 누구도 존재할 수 없다.
축구는 인생과 닮아있다. 그래서 더더욱 축구는, 우리 삶의 희망이다. 축구 경기는 ―하필이면― 90분이라는 불완전한 시간 동안 펼쳐진다. 처절하고도 치열한 승부의 현장 속에서 우린, 우리와 함께 싸워주는 열 명의 팀원들이 더 존재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합치면 심지어 열한 명! 완전함을 넘어선 숫자 11! 열한 명이 함께 하면 우린 우리의 침몰하는 배를 언제든 건져 올릴 수 있다. 그러니 싸워서 이기는 정치 따위는 버리고 이제 제발 사랑과 화합을 추구하자. 우린, 언제나 같은 팀이다. 여기서의 우리가 가족이든, 맨유든, 그리고 대한민국이든.
어쨌거나, 맨유는 단 한 명의 슈퍼스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팀이 아닌 열한 명이 함께 만든 ‘슈퍼 팀’으로서 그라운드를 지배하길 바란다. 계엄도, 탄핵도, 방탄도 없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축구라는 세계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