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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Dec 11. 2024

두려움이라는 착각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착각


명.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




퀴즈퀴즈! 

학교에선 가끔, 정말 가끔,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분들이 찾아올 때가 있다. 학교란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분들! 과연, 그게 누굴까요?     


군인? 군인은 생각보다 학교에 자주 등장한다. 곧 성인이 될 학생들에게 군인이란 직업을 홍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분들이다. 소방관? 역시나 필수로 매년 찾아오는 분들이다. 학교에선 소방 대피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간식 트럭 아저씨? 해가 갈수록 등장 횟수가 늘어나는 분들 중 하나이다. 관공서나 청소년 단체에서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 겸 간식 트럭을 보내 주곤 한다. 

정답은, 너무 빨리 정답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어쨌든 정답은, 경찰이다. 경찰의 등장은 학교 교사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다! 경찰관 혹은 형사님들은 예고도 없이 학교에 찾아와 특정 사건에 관해 업무 담당자에게 이래저래 질문을 던진다. 열에 아홉은 안 좋은 일이다. 그리고 몇 년 전에도, 학교엔 사건이 있었다.

사이버수사대 소속임을 밝힌 형사분은 SNS상에서 이뤄진 비방과 욕설에 관해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악플’! 자칫 잘못하면 학교폭력 사안이 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였고, 피해를 입은 학생의 신고로 사건 수사가 이뤄지는 듯했다. 이후엔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주먹질로 다툼이 벌어졌던 그 시절과는 사뭇 결이 다른 새로운 종류의 학폭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악플’이란 단어가 등장한 지도 어느덧 십수 년이 지났다. 익명성의 뒤에 숨어 그저 재미 삼아 특정인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세상이 바뀌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건 악플러는 사실 우리 모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기와 질투, 미움으로 점철된 세상은 나이를 먹든 말든 늘 우리 곁에 있다. 편견과 오해가 어느덧 사실이 되어 있는가 하면 합리적인 선택보단 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마치 그것이 선행인 듯, 배려인 듯, 오랜 고민의 결과인 듯 거짓을 일삼는 이들도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나도, 그러한 선택을 반복적으로 행한다. 나쁜 마음인 줄 알면서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비방과 모욕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면서도 나 역시 그들을 똑같이 비방하며 모욕한다. 그리고 갈수록 죄의식은 무뎌지고 모든 행위는 당연해지고 있다. 이런 어른이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두려움이 감지되면 일단 숨어버리는 습성이 생기면서 삶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이뤄졌다.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는 횟수가 줄었고 연락처에서 하나둘 이름도 지워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감추기 위하여, ―별거 아닌 듯하지만― 일단 카카오톡에서 생일 알람을 꺼버렸다. 제 발이 저린 것인가, 나의 이름에게 향할 타인의 시선이 왜 두렵고 무서웠을까? 일 년에 단 하루도 나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대단한 날도 아닌데 한창 먹고 살기 바쁜 20대 제자들이 선물을 보낸다고 큰돈을 쓰는 게 다소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기프티콘 수십 장을 받으면서 동시에 우리 집 현관에 택배 상자가 쌓이는 것도 사실 부담이긴 했고. 

카톡 알림을 없애고 나니 생일 당일, 매년 그날의 아침마다 요란하게 울리던 휴대폰이 잠잠해졌다. 그렇게, 나의 생일은 가족끼리 조촐하게 보내는 날로 이어지는가 했지만…….     


출근하자마자 교무실에선 깜짝 파티가 열렸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케이크를 준비해주셨다. 어라? 다들 어떻게 알았지? 알고 보니 전 교직원의 생일 날짜를 본인 플래너에 저장해둔 선생님이 계셔서 모두에게 미리 알림이 간 것이었다. 이렇게 민망할 줄이야. 난 선생님들 생일이 언제인지 잘 모르는데…….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수업 시간,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에서는 생일 축하송이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교탁에 이런저런 소소한 간식거리들을 준비해놓고 칠판은 나름의 축하 메시지로 가득 채워놓은 채 어리둥절해하는 선생님을 반갑게 맞이해줬다. 아니 난 너희 담임도 아닌데……. 모든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구석에 적혀 있던 ‘수업을 늦추려는 고도의 전략’이란 문구도 발견했으나 그것마저도 그저 귀여웠다. 생일은 생일이었다. 언제 또 소문이 났는지 온종일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모든 반에서 행복에 겨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퇴근 이후에도 역시나 축하 연락은 이어졌다. 졸업한 지 한참이나 지난 제자들은 물론 심지어 당시 군 복무 중이던 녀석까지도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정말 신기했다. 감춰도, 감춰지지 않는 것들이 있구나, 싶었고 무엇보다 세상엔 뒤숭숭한 소문, 모질고 독한 마음, 이런 것만 퍼지는 건 아님을 깨달았다.     


역시나, 내가 문제였다. 나의 착각이었다! 받을 땐 받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었나 보다. 세상엔 정말 감사할 일도, 감사한 분들도 많은데 그저 나에게 닿은 날이 선 것들만 인식하느라 정작 그들을 외면하기만 했다. 악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상이지만 곳곳에선 사랑을 실천하는 천사의 날갯짓도 존재하지 않는가. 그들을, 봐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흉흉한 세상이라는 핑계를 대며 희생과 배려까지 감춰놓을 수는 없다. 악플이란 이름으로 악의 세력이 점점 아이들의 세상까지 잠식하려 하지만 결국 선 善은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 이를 외면하지 않는 좋은 어른이 되어 보자고, 그저 세상을 탓하면서 글만 끄적이던 답답한 글쟁이이자 모자란 교사는 오늘도 용기 내어 당신에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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