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요즘엔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란 말도 있다지만 정작 그게 내 것이 되면 참으로 허탈하다. 수험 생활은 누구에게나 고되기에 단 일 년이라 하더라도 이걸 다시 겪는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의 스무 살은 대학의 낭만 대신 충정로역 2번 출구에서 200미터 가량 떨어진 강북 종로 재수 전문학원에서 채워졌다.
새벽 6시, 해가 뜨기 전 학원으로 출발했다. 지하철에선 제 발이 저렸는지 재수생인 티를 내지 않으려 일부러 소설책을 읽었다. 학원에 도착해서는 온종일 유명 강사들의 현장 직강을 듣다 밤 열 시까지 자습. 유독 영어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난 영어 강사님의 조언을 빌어 중3 과정부터 다시 공부해야만 했다. 하여간에 그 일 년이란 시간을 기억 속에서 꺼내 펼쳐 놓으면 온통 처참하고 괴로운 이야기들뿐이다.
하지만 인간이 괴로움만으론 살 수가 없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탈출구는 필요하니까, 그래서 나의 재수 생활 중 토요일은 언제나 축구로 채워졌다. 함께 재수하는 고교 동창들과 매주 주말 학교 운동장에 모여 일주일간 쌓인 공부 스트레스를 날리곤 했다. 가끔, 정말 가끔은 호프집에서 맥주도 한 잔씩 기울이며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더 나은 미래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나 주말의 끝은 맨유. TV 앞에 앉아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지나간 한 주를 마무리하던 그 시절이 지금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가슴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재수 시절뿐이었겠는가. 대학만 가면, 군대만 갔다 오면,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 내 삶은 평안 속에 머무를 거란 헛된 기대는 다시금 이어졌고, 아니나 다를까 인생은 언제나처럼 거대한 장막을 펼쳐 캄캄한 어둠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건 지금도 매한가지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 느낌은 정말이지 고통스럽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나의 탈출구 중 하나는 맨유다. 축구는 아쉽지만 나이가 들며 발목 관절에 무리가 생겨 탈출구에서 탈락했고, 생각해 보면 축구 말고도 날 위로해주던 수많은 것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 내게서 멀어졌다.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렇지만 끝까지 ‘희노애락애오욕’을 동시에 선사하던 다채로운 감정의 집합체인 맨유만큼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런 감정 연결에 변화가 올 거라 말해주는 이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결이 다른 듯하다. 난 맨유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연애 감정이나 가족에게 느끼는 그것과 같은 감정은 아니다. 유명 연예인을 사랑하는 팬심과도 같달까. 잘 되면 기쁘긴 한데, 잘 안 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인 무언가를 하지는 못한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하는 수밖에는. 그런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가끔은 연인이나 가족보다도 더한 위로가 된다. 주변인들에게는 지치고 괴롭다며 무작정 거리를 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정말 사랑하는 이들이 내게 상처가 되는 역설적인 순간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맨유는? 절대 그렇지가 않다. 날 감정 쓰레기통 삼아 힘든 내색을 하며 위로를 요구하지도 않고, 날이 선 채 내게 깊은 상처를 새겨놓는 적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격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어서인지 오히려 우린 서로에게 그저 좋은 관계이기만 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만의 탈출구가 되어 주길 희망해선 안 된다. 그들도 사람이라서, 탈출구가 되어 주기보단 자신의 탈출구를 찾기 마련일 테니. 자꾸만 바라고 원하며 무언가를 요구하다 보면 처음엔 선의와 애정으로 가슴을 열어 품어주겠으나 그것이 쌓이면 쌓일수록 상대는 하나씩 풀어진 단추를 채우고 말 것이다. 그 사람이 연인이든, 가족이든. 그러니까 내게 맨유가 있듯, 당신에게도 맨유가 있어야 한다.
어쨌거나, 맨유라는 존재가 있어 늘 주말을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이다. 이기면 다음 경기도 이겼으면 하는 것이고, 지면 다음 경기엔 극복하길 바라는 것. 그 정도의 관계, 맨유가 있어 새로운 한 주를 좀 더 기운 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에게도 맨유가, 있으십니까? 당신의 맨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