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대한민국 야구계 전술 중에는 ‘김별명’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태균 선수가 있다. 하도 별명이 많아서 아예 별명을 ‘김별명’이라 붙인 것. 그런 선수가 축구계, 그것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도 존재했으니 포르투갈 국적의 공격수 ‘루이스 나니’이다.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자 환호하며 그를 뒤쫓는 나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나니는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동료들에게 달려갔고 그게 마치 봉산탈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은 ‘봉산나니’. 포르투갈 국가대표 경기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득점 장면에서 마지막에 괜히 공을 건드리는 바람에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게 했고 결국 골은 취소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붙은 별명은 ‘망나니’. 최고의 선수가 되길 바랐지만 화려한 플레이 모습과는 달리 축구 지능이 살짝 떨어진다는 평을 받으며 붙은 ‘보급형 날두’.
별명은 별명이고, 그의 드리블과 슈팅은 시원시원했고 골을 넣은 뒤 펼치는 텀블링 세리머니는 정말이지 서커스를 보는 듯 화려했다. 맨유에서만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리그 도움왕을 기록하기도 했고 올해의 팀에 선정된 적도 있을 정도로 선수로서 매우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 그라운드 위에서 나니는 매 순간 열성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엉뚱한 플레이로 인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혼쭐이 난 적도 있었지만, 승리를 갈구하며 언제나 죽을힘을 다해 뛰는 그였다.
MLB의 전설 데릭 지터가 설립한 ‘플레이어스 트리뷴’이라는 플랫폼은 전 세계 스포츠 스타들이 자전적 이야기를 펼쳐내는 미디어 플랫폼이다. 2020년 7월, 루이스 나니의 인터뷰가 그곳에 실렸고 그가 가진 가슴 아픈 과거사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니는 카보베르데라는 아프리카의 섬나라 출신이다. 포르투갈 리스본 교외 지역으로 이주한 뒤 부모님과 아홉 남매는 쥐와 도마뱀이 득실거리는 목조 가옥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집을 나선 아버지가 몇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하며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나간다. 나니는 형 파올로와 동네를 기웃거리며 구걸까지 해야 했는데 리스본 번화가의 피자헛에서, 나니의 역사가 바뀌는 사건이 벌어진다. 음식을 얻지 못해 가게에서 나와 돌아가던 형제를 불러세운 한 여인이 있었던 것. 여인은 피자를 건네며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 뭘 하다가 온 거니?”
“축구요.”
“그래? 내일도 다시 와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니?”
놀랍게도 여인은 얼마 뒤 지인인 프로축구 선수에게 형제를 소개했다. 가족의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니의 형 파올로는 비행을 저지르며 선수가 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니는 달랐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팀에 합류했으며,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달리기를 했고, 빗속에서도 혼자 꾸준히 훈련에 임했다. 그렇게 성장한 나니는 17살의 나이에 포르투갈 최고 명문 구단 스포르팅 FC에 입단한다. 이후 나니의 집안이 겪던 가난은 해결되었고, 가족을 떠난 아버지가 법적인 문제로 돌아오지 못했던 과거의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이후 1군 무대에서 맹활약을 이어 가던 나니에게 여러 빅클럽의 제안이 쏟아졌고 2007년, 비로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한다. 그렇게 나니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으며 클럽과 국가대표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남겼다.
사실 나니는 개인적으로 86년생 동갑내기여서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 있다. 정말 놀라운 건, 그가 2024년까지 꾸준히 선수로서 활약했다는 점이다. 맨유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그는 이후에도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호주, 그리고 자신의 고국 포르투갈에서 끝까지 집념을 가지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커리어 통산 725경기 152골 169도움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긴 채. 가난도, 나이도, 어떤 것도 그의 집념을 꺾지 못했다. 그는 2022년 인터뷰에서 맨유 선수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There is no hunger. There is no desire to win. There is a lot talented players but they don’t want to get tired. They prefer not to sweat.”
“배고픔이 없다. 승리에 대한 욕망이 없다. 많은 재능을 가졌지만 선수들은 지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땀 흘리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나니가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 그의 삶을 통해 온전히 보여주고 있는 건 주어진 환경보다 우리가 가진 태도와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어쨌거나, 맨유를 빛낸 위대한 선수 루이스 나니의 집념이 당신에게 옅게라도 새겨졌길 바란다. 누구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와 당신의 가슴에도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