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대 라이벌 중 하나인 맨체스터 시티. 맨유는 계속해서 퇴보하는 반면 그들은 자꾸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다. 프리미어리그 4연패, 잉글랜드 구단 사상 두 번째 트레블 달성 등 위대한 업적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솔직히 부럽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런 맨시티를 완성한 리더는 단연 감독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이자 바르셀로나 FC의 레전드인 그는 이미 이전 구단들에서도 계속해서 승승장구를 이어온 그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명장이다. 그런 그도 라이벌 맨유에게 크나큰 패배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줄리아 로버츠의 행보 때문이다.
펩 과르디올라는 자기 인생 세 명의 우상으로 NBA 스타 마이클 조던,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 그리고 미국 영화 배우 줄리아 로버츠를 꼽았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모두가 놀랄 만한 깜짝 고백을 한다.
“이번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해도 나는 패배자다. 줄리아 로버츠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방문했다. 그녀는 우리를 보러 오지 않았다! 내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해도 내 우상 줄리아 로버츠가 맨체스터에 왔는데 우릴 보러 오지 않은 사실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에 거주 중인 줄리아 로버츠는 영국 맨체스터를 방문했을 때 가족들과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를 방문했고 본인 SNS에 여러 장의 사진을 업로드했다. 뿐만 아니라 TV 토크쇼나 인터뷰에서도 본인이 얼마나 맨유에 진심인지를 줄곧 밝혀왔는데, 이 사실이 과르디올라 감독에겐 커다란 실망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 무슨 안타까운 삼각관계란 말인가. 솔직히는 안타깝다기보단 ‘쌤통’이었다. 그러게, 뭣 하러 맨시티의 감독을 하고 계십니까? 진즉에 맨유 감독으로 오셨어야죠! 여하튼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독해 보이기만 했던 그가 이토록 순정남이었단 사실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 나름 유쾌한 에피소드였다.
문득 박현욱 작가의 장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레알 팬 남자와 바르샤 팬 여자의 사랑 이야기. 이 작품의 주제 의식 중 하나인 ‘제도의 모순과 관습에 대한 비판’ 같은 건 차치하고, 그저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관하여,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와 나. 모두가 잠든 새벽 각자의 손에 맥주 한 캔씩을 쥐고 ―맨유 공홈에서 구입한 유니폼 키트를 입고― 소파에 앉아 오붓하게, 아니 열정적으로 함께 맨유를 응원하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현실엔, 우아하고 아름다운 ‘치맥’ 대신 ‘깡소주’와 제육볶음이 깔려 있고 축구 얘길 나눌 그녀는 공허와 적막이 대신한다. 아, 이게 단순히 결혼 여부의 문제는 아니다. 유부남들은 오히려 내가 겪는 정도도 화려한 낭만이자 사치라고들 말하니까. 어쩌면 내가 말한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란, 결국 평생토록 겪어보지 못할 상상 아니 망상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소설 속 세계는 역시나 ‘소설 쓰고 있네’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지도.
그럼에도 나는 나의 이상 理想을 쉽게 포기하진 않으련다. 펩 과르디올라마저도 실패한 우상이자 이상형과의 시간. 그녀와 나는 반드시 잉글랜드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유 공홈에서 구입한 유니폼 키트를 입고―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관람할 것이다. 그땐 온 힘을 다해 큰소리로 외쳐야겠지.
“이봐, 펩! 보고 있나?”
어쨌거나, 맨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가 사랑에 성공하길 기원한다. 결코 삼각관계에 실패하지 말고 본인의 우상이자 이상형과 주말 새벽마다 함께 맨유를 응원하길. 그때 우린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관하여 비로소 완벽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