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박지성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영입했던 장본인은 알렉스 퍼거슨,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이다. 그는 98-99시즌 리그, FA 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하여 소위 ‘트레블’을 달성하여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하였다. (그때부터 공식적으로는 ‘알렉스 퍼거슨 경’이라고 칭한다.) 맨유에서만 총 38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단순히 맨유만이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더 나아가 축구계를 대표하는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그에 대해 알아보자!
참, 화려한 경력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퍼거슨은 300여 경기를 뛰며 170여 골을 넣었을 정도로 선수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여하튼 퍼거슨은 32살의 젊은 나이로 스코틀랜드 3부 리그 ‘이스트 스털링셔’라는 팀의 임시 감독직을 맡았고,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세인트 미렌’으로 팀을 옮긴다. 파산 위기여서 선수가 총 8명밖에 안 되었던 팀을 확실하게 개선시킨 퍼거슨의 능력을 알아보고 제의가 온 것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만년 하위권이었던 팀을 완전히 탈바꿈시키는데, 무엇보다 그가 가진 진가는 ‘선수단 장악 능력’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20살이 채 안 된 어린 피츠 패트릭이란 유망주를 주장으로 선임한 사건이었고, 그도 그럴만한 것이 팀에서 나이가 좀 있는 고참 선수들이 새로운 감독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거나 술에 취해 훈련에 불참하는 일이 잦았기에 팀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퍼거슨만의 방책이었다. 결과적으로 기회를 얻은 피츠 패트릭을 비롯한 여러 유망주들은 맘껏 자기 기량을 뽐냈고, 고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축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퍼거슨의 전술적 역량까지 더해져 팀은 3년 만에 1부리그로 승격했고,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리그 애버딘 FC로 적을 옮겨서도 퍼거슨의 비슷한 행보는 계속되었다. 이스트 스털링셔, 세인트 미렌보다 훨씬 더 큰 클럽이었던 애버딘 FC의 선수들도 처음엔 그리 녹록지 않았다. 쉽사리 새로운 젊은 감독을 인정하지 않았고,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감독을 저격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퍼거슨은 결국 선수단을 장악하고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했다.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거나 지역 언론을 이용하여 경쟁 팀들을 언급함으로써 선수단이 심리적으로 무장하고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하는 등 퍼거슨은 자신만의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했다. 이후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르게 되며 팀의 순위는 점점 상승했고, 크고 작은 대회의 우승컵도 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리그 우승은 물론 1982-83시즌 ―지금의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다. 와닿지 않을 이들을 위해 비유하자면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우승컵을 올린 것과 같달까? 2002년 거스 히딩크의 4강 신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될 것이다. 세계 최고 구단을 결승에서 상대함에도 퍼거슨과 그의 아이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결국 승리를 쟁취해냈다.
우리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훈련이었다. 토요일 오후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이미 훈련장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알렉스 퍼거슨, <리딩> 중
지금이야 세월이 많이 흘렀고 투자의 가치와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는 시대이지만,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보단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더욱 주목한다면 최상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퍼거슨의 교훈이지 않을까. 이후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되어 우리가 알다시피 위대한 역사를 써 내려갔고 그를 겪은 선수들 누구나 그를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한다.
제2의 칸토나, 스콜스, 긱스, 호날두는 나올 수 있지만, 제2의 퍼거슨은 나올 수 없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선수, 에릭 칸토나
감독님이 없었다면 제 경력에서 이룬 업적들은 없었을 겁니다.
-데이비드 베컴
처음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으나 자기만의 능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이제는 역으로 모두의 찬사를 받는 위대한 감독이자 스승, 알렉스 퍼거슨. 사실 생각해보면 특정 직업이나 지위만이 누군가의 스승이 되고, 또 제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누군가를 보고 그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를 스승으로 삼으면 되니까. 또 생각해보면 반대로 우리 역시도 타인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릴 보며 배우고 성장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쉽진 않겠지만. 그러니까 역시나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퍼거슨 감독 역시도 위대한 감독이기 이전에 위대한 사람이었을 거다. 능력만 좋은 인물에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동의할 거로 생각한다.
그나저나 말이다.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라면, 난 무엇을 전해줄 수 있는 존재일까? 아니, 그전에 난 충분히 타인에게 가르침을 전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는 할까?
부끄럽지만 아직은 배움의 단계인 듯하다. 그렇지만 언제든 가능하다. 이 세계엔 수많은 현인이 존재하니, 그들의 삶을 면밀히 살피고 내게 필요한 가치들을 차근차근 체화하며 좋은 어른으로, 좋은 스승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겠다. 마치 다짐을 늘어놓은 일기인 듯 하지만, 결국 이건 당신에게 함께 하자는 동반자로서의 메시지이다.
어쨌거나, 맨유는 위대한 지도자 알렉스 퍼거슨이 떠난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그가 심어놓은 승리의 DNA가 발동되어 다시금 정상궤도로 올라설 것을 믿는다. ―아직 최정상에 서 본 적은 없으나― 위대한 선인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본받아 나 역시 위대한 맨유와 그 궤도를 같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