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병에 대한 고찰
대학생 때는 확고한 취향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극강의 아방가르드함을 뽐내거나 특유의 세심함만이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그래야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실제로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브랜드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처럼. 같은 과 동기들 역시 결국은 매니악한 놈들이 성공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나는 그런 놈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입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보니 정작 구매한 옷들은 넘쳤지만 결국 졸업할 때까지 옷을 잘 입는 놈이 되진 못했다. 웃긴 건 이 무의미해보이는 행위가 결국 남는 것이 있었다. 탐색과 낯선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심지어 어느 순간 새로운 시도 자체를 즐기고 있다. 직업마저도 (불안정해보일 수 있겠음) 어느 때는 아웃도어 상품의 마케터였다가 1년 뒤에는 입사자를 교육하고 있고 다음 해에는 라이브커머스를 기획했다. 그리고 올해, 한 매체의 에디터는 직무 아래 방금 전까지 뉴스레터를 쓴 후 퇴근 준비를 한다.
알고 보니 나는 몰입에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취향이 확고하지는 않아 방향은 여러갈래지만 그 어느 곳에서든 시도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집중하는 놈이었다. 아-주 오래된 브랜드가 아직 흙속의 진주처럼 발견되지 못했다면. 우연히 방문한 공간이 아직 동네 주민들이 찾지 못한 최고의 공간이라면. 열정 가득한 스타트업이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면. 내가 가진 오기는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콘텐츠를 통해 타인에게 조금 더 닿게 해주고 싶다는 사고하에. 결국은 사람이 있는 곳, 숨결이 닿는 부분에서.
그러다보니 이제는 내가 추구하는 것이 확고해졌다. 다만 예체능 병을 완벽히 탈피한 것은 아니다. 뾰족하거나 특별하진 않으니까. 다만 내가 느낀 것들을 부디 여러분들께서도 마주하실 수 있도록. 몰입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담는다. 조그만 유머러스함을 섞어서. 감사하게도 이런 평범한 취향이 누군가에게는 닿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