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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창 May 14. 2020

'한국'과 '미국'의 육아(育兒) 下

유치원 때부터 해외에 살던 내가 느끼는 '한국'과 '미국'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에, '한국 엄마 vs 미국 엄마'라는 주제로 한창 인기를 끌었던 EBS 다큐프라임 방송이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자녀를 둔 한국 엄마 10분과 미국 엄마 10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배열을 다르게 하고, 아이가 이 단어의 배열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지 보는 아주 간단한 실험이었다. 표면적인 실험의 내용은 이러했으나, 실제 내용은 부모가 아이가 문제를 푸는데 '개입을 하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출처: EBS 다큐프라임

결론부터 말하면 상단과 같다. 아이가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한국 어머님들은 아이의 문제를 '도와'준다. 정확히는 아이의 문제를 '풀어'준다. 심지어 이렇게 푼 문제를, 한국의 어머님들은 본인의 아이가 푼 거라고 아이를 칭찬해주며 격려한다. 미국 어머님들은 조금 달랐다. 실험은 아이가 단어의 배열을 잘 해결할 수 있는지였기에, 묵묵하게 아이가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아이가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걸 기다리는 게 부모의 역할인 듯 보였다. 


필자는 한국과 미국 두 곳 모두에서 창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 실제로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한국 친구들과 과제나 일을 할 때 이들은 '리더십' 있는 누군가가 개요와 전체적인 정리를 해줘야 한다. 이런 정돈된 규칙 하에 그들은 정말 전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임무 수행을 잘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이 없는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도 '스스로 일을 찾아' 업무에 임했다. 본인의 역할과 포지셔닝을 알기에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수행한다. 물론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으나, 오히려 업무를 담당하는 입장 해서 필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하거나 다른 관점에서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더 좋았다. 




출처: EBS 다큐프라임

한국의 어머님들은 상대적 이익에 집중했다. 상대적 이익이란, 행복의 초점이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비교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100억 원대 자산가여도 내 이웃집에 1,000억 원대 자산가가 산다면 그 집을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미국의 경우 상대적 이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어떠한 행복도를 갖는지가 최우선으로 중요하다.



Connecticut, Virginia, Florida, 그리고 Califronia에서 학교를 다녀본 필자가 느껴본 바로는 미국은 철저히 개인 중심적인 사회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직업을 갖고 있던 '남들의 시선'에 상대적으로 덜 신경 쓴다. 


출처: Business Insiders

상단에 보이는 아저씨가, 어떻게 보면 필자가 생각하는 대표적인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 미국인이다. 이 분은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배스킨 라빈스'의 창업자의 손주 Ocean Robbins이다. 복잡하고 건강에 해로운 음식들을 팔고 있는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사랑하는 부인과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막대한 부를 상속받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만의 '자유'나 '옳고 그름'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는 이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한국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 일부는 Ocean Robbins를 보며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일부는 그의 행동을 보며 박수를 치며 경외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신 혹은 당신의 자녀가 Ocean Robbins처럼 한다 하는 것엔 반대를 할 것이다. 그리고 0에 수렴하는 사람들이 Ocean Robbins에 영감을 받았으며 그처럼 산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식 교육과 한국식 교육을 섞어서 받은 것 같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행복'을 쫒으라 말씀하셨다. 그와 동시에 물질적인 풍요가 줄 수 있는 권한과 행복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공부 습관이나 공부 시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말씀하셨지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어도 그에 대한 질책은 크게 하시지 않으셨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립심과 독립심은 강한 아이지만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는 애매한 위치에 사람으로 자랐다. 


어떤 교육방식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현재 교육열은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 이익이 크기에 '내가 너 보다는 점수가 높아야 해'라는 사고라던지, 이런 사고를 옆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서포트해주는 부모들이 존재하는 교육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다. 하지만 자녀에게 부모는 모든 걸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상대적인 행복'에 집착하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에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부모님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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