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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Jul 08. 2021

기린

엄마는 병든 아버지 곁을 24시간 붙어 있다. 엄마가 보이지 않을 새면 아버지는 몹시 불안해했고, 병세가 짙어질수록 엄마를 옆에 꼼짝없이 붙잡아 두었다. 병간호에 힘든 엄마를 대신해 우리가 아버지 곁에 있을라치면 한사코 싫다며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는 한평생 대나무처럼 곧게 사셨다. 이른 새벽 장에서 야채를 떼다 시장에 내다 파셨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 분이 자신의 아픈 모습을 자식들에게 온전히 보이는 것도, 늙고 병든 몸이 혹여나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자식들 앞에서만은 아파도 아픈 내색 없이 평온한 상태를 보이고자 애를 썼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척과 집을 일주일을 비운 상태라 집에 챙겨야 할 일이 많았다. 내가 아버지 곁에 있기로 하고 엄마는 하루의 자유를 얻었다. 모처럼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엄마는 병원을 벗어나 시골집으로 외출을 했고, 아버지 곁에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있었다. 그날은 왠지 내가 병원에 있는 것을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혼자 있을 수 있으니 집에 가라고 성화를 내실 법도 한데 순한 양처럼 고개만 끄덕이신다.     


아버지랑 딸이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와 난 한동안 서먹한 기류가 흘렀다. 멋진 자연환경에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곳에 아버지와 내가 마주했다면 이처럼 어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색함이 싫어 나는 가방을 뒤져 종이와 펜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열흘 후 드로잉 전시를 앞두고 책 사이에 종이를 꽂고 다니다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그림을 그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펜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워 있던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베개를 등에 받치며 앉는다. 나는 침대 머리 부분을 높이고 뉘어 있던 식판을 세워 그 위에 아버지의 두 팔을 올려놓고 편한 자세로 앉혀 드렸다. 무슨 중요한 말씀이라도 하실 듯 바른 자세를 잡고 나를 지켜 보신다.  

   

“어제 형록이가 왔다갔는데... 할부지 아프지마! 카더라 그 자식이 그 말도 할 줄 알고 이제 많이 컸더라”     

4살 된 막내 손주를 무척 예뻐하시는 아버지. 형록이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형록이의 재롱을 다 받아주는 것을 보면 우리 아버지도 사랑이 있는 분이셨구나! 손자, 손녀에게만은 유독 너그러우신 아버지. 시골집 마당에 자두나무 한그루가 있다. 여름이 되면 자두나무에 얼마 되지 않는 자두가 열린다. 엄마가 자두를 따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자두나무에 손도 못대게 하셨다. 손자들이 오면 자두나무에 자두의 개수를 세어 똑같이 자두를 따 먹는 재미를 주고 싶어서였다.      


아버지는 어릴 적 고생담을 자주 늘어 놓으셨다. 그날도 변함이 옛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부모 없이 크다 보니 자식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몰랐다 아이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농담처럼 “우리 클 때 못해 준거 후회하시죠?” 라고 툭 던졌다.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낮은 목소리로 “후회하지!” 진지한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이었고, 당신이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갑작스레 말씀하실 줄이야. 지금까지 내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쓸데없는 소리’라고 고함을 치실텐데. 당신이 잘못했노라고 이렇게 쉽게 말씀하실 줄이야. 왜 이렇게 약해지신 걸까.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이라도 하신 탓일까! 아니면,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을 오늘은 꼭 하리라고 작정이라도 한 듯 이제서야 이 말씀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지 그 숱한 날을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자식들을 많이 낳기만 하셨지 제대로 보살펴 주지 않았다는 원망이 컸다. 마치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는 듯했으며, 그 구멍에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쳐 그 바람을 막아보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던 걸 당신은 아시기나 하셨나요. 가고 싶었던 미대 진학도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 했던 시간들을 아시나요? 엄마는 추운 겨울날에는 찬물에 손을 넣으며 두부와 콩나물을 팔았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땀을 흘리며 배추를 다듬어 팔며 우리를 키워 온 모습을 기억 하시나요?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셨나요? 무능력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빠르게 스쳐 갔다.     


나는 지금 아버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툭 내뱉을 수가 있는 건지, 순간 분노와 원망이 뒤섞여 올라 눈가에 눈물이 고여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동안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으나, 나는 더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고개만 떨군 채 그림만 그려댔다. 불편한 기류가 계속 흐르자 아버지는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2시간쯤이 흘렀을까 아버지는 상기된 얼굴로 병실을 들어서며 내게 말씀하신다.     


“전시장에 가니깐 새 그림이 어찌나 잘 그려져 있던지 진짜 멋지더라! 니도 얼른 가서 보고 온나”     


내 등을 떠밀 듯 밖으로 밀어내신다. 대학병원에는 작은 갤러리가 하나 있다. 아버지를 뵈러 병원 가면 빼놓지 않고 전시장을 들러보곤 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림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뭇가지에 평온하게 앉아 있는 새, 하늘을 무리 지어 날아가는 새떼들의 사진이었다. 아버지 눈에는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모두 그림이라고만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렇게 사진과 그림을 명확히 구분할 줄 모르셨다. 딸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사진도 그림으로 본 모양이다. 아버지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전시장을 한번씩 둘러보면서 병원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다. 평생을 장사꾼으로 사셨기에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셨고 관심도 없으셨다. 손녀가 그려준 새 그림도 거실 테이블 유리 밑에 넣고 즐겨 보셨다. 딸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림을 보는 취미가 생겨났다. 그림으로 딸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아마 더 늦기 전에 딸과 가까워지고 싶은 아버지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그날, 그렇게 아버지는 내게 먼저 손을 내미셨다. 그러나 나는 못 본 척 그 손을 잡아 드리지 못했다. 약해진 아버지 모습에 억눌렸던 내 감정이 무너져 내려 그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쏟아부을 것 같아 두려웠다. 불편한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컸다. 척과에 올라가면 혼자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가 있다. 순간 수많은 갈등을 했다.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무슨 생각을 하세요” 라며 다정한 딸이 되어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 곁에서 항상 몇 발자국 물러나 있었다     



아버지를 보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나 또한 서툰 엄마였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이기 전에 한 아이였고, 한 남자였고,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으며 나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 없이 자라 부모의 사랑이 뭔지도 몰랐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아버지 되어 하나둘씩 겪어야 했던 일이었기에 실수와 힘듦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을 조금 당겼더라면 어떠했을까?     


일주일 후 아버지는 폐렴 악화로 중환실로 내려가셨고, 그 후 일주일 후 우리와 작별 인사도 없이 영원한 이별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을 가슴에 묻은 채 그렇게 난 아버지를 보냈다. 내게 주어졌던 아버지와의 단 하루의 시간이 이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줄 알았다면 난 그렇게 비겁한 모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롭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며 사랑했었노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내 마음을 전할 마지막 시간을 놓쳐버린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이제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아버지를 가슴에 남겨두게 되었다.  

   

< 기린 >

그날 아버지 옆에서 그린 드로잉이다. 기린은 풀 속에 몸을 숨기며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리고 있다.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난 그림 속 기린이 되어 있다.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기린은 안전한 울타리에 숨어 있는 나와 동일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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