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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Jul 08. 2021

사랑이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검은 비옷을 입고 무릎까지 오는 검정색 장화를 신은 남자가 모자를 눌러 쓰고 뱀장어를 잡아 자루에 마구 집어넣고 있다. 남자의 표정은 무척이나 힘든 모습이 역력했다. 뱀장어 한 마리를 마루에 패대기치며 “이놈은 어찌나 힘이 센지 내 힘에 부치는 놈이야”라고 한다. 순간 나는 그 뱀장어를 보았다. 지쳐 숨이 곧 끊어질 듯 헉헉거리며 몸뚱이를 이리저리 비틀며 힘겹게 움직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꿈이었다. 자주 이런 꿈을 꾼다. 죽음의 문턱에서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 통증이 이대로 멈춰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무서운 꿈을 꾼다. 오늘처럼 이렇게 굵은 빗줄기가 쏟아 내리는 날이면 심한 불안을 느낀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다.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사방을 훑는다. 며칠 전 굵은 소나기가 마구 퍼부어 대는 그날 역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몸은 몹시 무겁고 피곤해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명쾌한 목소리는 부산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친구의 목소리였다. 그냥 누워있다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구는 만나자고 한다.     


가까이 있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친구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내 감정을 다 읽어 낼 줄 아는 친구. 그 친구의 긍정 에너지를 받으면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친구를 만났다. 푸른 바다가 훤히 보이는 조용한 카페였다. 나를 본 순간 친구는 두 팔을 벌려 꼭 안아주었다.     


“많이 힘들었지”      


이런 날씨에 내가 힘들어 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두 줄기의 눈물만 흘러내렸다. 친구의 온기가 내 온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이내 마음의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 우린 그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먼 길을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면서 그날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전 표현예술 치료 워크샵에 참여했다. 교수님의 부드럽고, 낮은 음성을 따라 눈을 감고 방문을 여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문을 열기 전 주변은 칠흙 같이 어두운 세상이었다. 마치 자주 꿈을 꾸었던 그 소나기나 퍼 붇는 날 한 줄의 빛도 보이지 않고 캄캄한 곳에 내가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손잡이를 힘껏 돌렸다. 순간 온 세상이 분홍빛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벚꽃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꽃들의 화사한 빛깔이 열린 방문을 뚫고 어두웠던 주변을 환하게 밝혀줬다     


몽글몽글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꽃들 속에 행복한 일이 생길 것 같아 설레었다. 나와 이야기하며 한참을 웃었던 그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에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편안한 자세로 누운 채 분위기에 휩쓸려 잠이 들어 버렸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풍광도 있고,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한 줄기의 빛조차 들지 않아 시들고 말라버린 꽃처럼, 컴컴한 터널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함’ 바로 ‘사랑’임을 알았다     


이제야 말 할 수 있다. 삶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받는 순간이다. 그날 불안하기만 했던 나를 꼭 안아주었던 친구의 따뜻함이 있었기에 나는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랑 2021.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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