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력 그 너머의 아름다움
한 번쯤은 아침에 새벽 이슬이 망울망울 맺힌 꽃 한 송이를 휴대폰 카메라로 정성스럽게 찍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때 접사 모드로 피사체를 사진에 담으면 그것만의 시각적 매력이 한 껏 드러나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접사 사진은 물체의 크기를 확대하여 촬영한 사진을 일컫는다. 보통 이런 종류의 사진에는 학문적인, 특히 과학적인 연구 가치가 있는 대상들이 피사체로 이용된다. 인간이 어떤 물체를 육안으로 관찰하지 못하는 크기로 확대하고 그것을 이루고 있는 구조를 포착하여 그것의 과학적인 원리를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자가 한 곤충이 특정 방식으로 비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고 해보자. 이러한 행동방식에는 어떤 원인이 있는지 조사할 때 연구의 일부로서 날개의 외형적인 구조를 조사하기 위해 날개를 확대하여 접사 사진을 촬영할 것이다. 이때 그 사진들은 해당 피사체의 모습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피사체들을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이지 않는 이상 가끔은 그 이미지에 대해서 뭔지 모를 미시감*이 들 때도 있다. 마치 다른 세계의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그 미시감을 흥미로운 사진적 소재로 다룬다.
내가 미시감에 대해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때는 내가 다니던 사진학과에서 한창 예술 사진에 관한 이론 수업을 듣고 있었던 시기이다. 나와 학생들은 그 수업에서 abstract, 즉 추상에 관한 소재를 활용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념이나 해석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과제로 받았다. 나는 인위적인 무늬를 만들어서 추상적인 피사체를 만들 수 없을뿐더러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의 피사체에 대한 중심은 주로 자연물에 있었다. 자연물을 활용한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내가 시도해 볼 만한 것에는 접사 촬영이 있었다. 여러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소재들을 찾아다니다가 직경이 약 1.6m가 되어 보이는 고목의 일부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생전 처음 보는 그 모습에 매료되어 그 외형을 이리저리 관찰하다가 아주 흥미로운 형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바다 물결과 같았고, 어떤 곳은 유려한 곡선을 표현했다. 나는 이런 보석 같은 형상들을 마치 고고학자가 붓으로 섬세하게 화석을 발굴하듯이 정성스럽게 촬영했다. 그 이후로 고목이나 다른 자연물에 보이는 추상적인 형상에 집중하며 작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촬영에는 적절한 기술이 더 들어가야 완전한 내 갈망을 채울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흔히 접사 촬영에는 관객으로 하여금 아주 작은 단일 피사체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얕은 심도로, 즉 피사체 이외의 부분은 모두 흐릿하게 나올 정도로 자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방법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Focus Stacking이다. 이 방법은 필름이나 카메라의 센서가 설정하는 경계선, 즉 한 프레임 안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모든 피사체들에 초점을 맞추거나 하나의 피사체의 모든 부위가 선명하게 표현된 사진을 촬영할 때에 쓰인다. 우선 한 장소나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촬영한 이미지(Focus)를 모아서 그 이미지들을 정렬하여 겹친 다음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Stacking)한다. 그 결과 프레임 안의 모든 곳의 초점이 뚜렷하여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 값을 최대로 맞춰 촬영한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이 방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프레임 안의 모든 것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순수예술 분야에서 이렇게 여러 피사체들이 한 프레임에서 선명한 초점으로 표현된다면 그것들이 서로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나는 이 두 방법으로 고목이나 자연물의 일부를 최대한 확대하고, 뷰파인더 속에서 정의되는 한 프레임을 많게는 16등분까지 나누어 16장의 서로 다른 위치에 초점이 중심인 사진들을 촬영했다. 이런 촬영에는 날씨의 영향이 매우 크다. 가장 적절한 날씨는 의외로 흐린 날씨인데, 구름이 햇빛을 분산시켜 피사체의 곳곳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사광선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를 적절히 조합하여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당시 그곳은 안개의 영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어서 지속적인 직사광선을 기대할 수 없었다. 나는 피사체의 구석구석을 밝히는 빛과 카메라를 이용해서 프레임의 한 부분씩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나는 사진에서 피사체의 색감을 빼고 흑백으로 표현했다. 관객들로 하여금 피사체만의 외형적 특징에 집중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치 인상주의 화가가 붓을 거칠게 다루어 그린 추상화와 같았다. 나는 이런 접사 촬영을 통해 식물의 특정 구조나 무늬를 극히 확대하여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대형 사진으로 인화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에 관한 많은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관객들이 상상한 이미지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자연물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자 한다. 사진이란 관객의 시점을 조작하고, 나아가 관객의 관점을 조작한다는 것에서 그것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진가의 전시회를 본다는 것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다.
이처럼 접사 사진은 우리에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하게 만드는 매력을 부여하고, 주변의 사물들을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당신에게 그런 관찰력이 있다고 확신한다면 휴대폰을 들고 접사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도 사진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미시감(未視感): 이전과 다른 체험으로 과거에 경험했던 상황이나 물건을 당면했을 때에 첫 경험처럼 느껴짐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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