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여덟 살 아이의 여름(2024.06-2024.08)
아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갓난아기시절부터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남다른 아이를 키우며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썼는데, 이제 그 글을 묶어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략 완성된 초안을 들고 상담가인 지인에게 찾아갔다. 상담 경험과 임상학적 지식을 갖춘 데다 출생 직후부터 아이를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그의 피드백을 듣고 싶었다. 원고를 읽고 지인이 말했다.
"원고에는 사회적 기술만 담겨 있지, 마음 읽기 연습은 담겨 있지 않네요?"
내 원고에는 사회성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기술을 가르쳐 줘야 할 이유로 가득했지만, 가장 중요한 마음 읽기에 대한 과정은 없었다. 아이의 감정이 충분히 수용된 후에야, 비로소 타인의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된다는, 사회성의 기초인 공감 능력을 소홀히 했던 거였다.
나 또한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다. 되돌아보면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내 감정에 대해 공감해 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유난스럽게 왜 그러니?"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나는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감추는 방법을 배웠다. 보통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가 감정이 차오르면 한꺼번에 폭발하는 식이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보다 세련되게 감정을 숨기는 방법을 익혔다. 자주 혼자 있었고 일기를 썼고 음악을 들었다. 종종 달거나 매운 음식을 찾았고 가끔 걸었다. 이 방법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나를 이끌고 무던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이의 감정을 모른 체 하고 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적당한 행동만 가르치고 있다.
훈육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적당한 훈육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공감받은 경험이 적었던 내게 마음 읽기는 어려운 숙제다. 대신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은 쉬워 보였다. 행동치료 기법 중에 강화와 처벌, 소거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소거란 쉽게 말해 '무시하는 방법'이다. 아이의 행동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아이를 혼내는 것도 부모의 관심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문제 행동이 반복될 때는 부정적 강화를 지속적으로 주기보다는 아예 모른 척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일례로 타임 아웃. 일정 시간 동안 아이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사실 나로서는 이 방법이 편할 때도 많다. 아이를 위한 타임 아웃이 아니라 나를 위한 타임 아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행동 치료적 방법을 찾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든 결국은 균형을 잡아야 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나를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의식적으로라도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처음은 아이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과정부터. "짜증 나"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짜증 났구나" 정도만 말해주는 것.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