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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Oct 04. 2024

첫 친구, 마지막 친구

만 여덟 살 아이의 가을(2024.09-2024.11)




며칠 후면 아이는 만 아홉 살이 된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계속 다른 반에 배정되었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야 드디어 같은 반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면 아이는 친구와 나란히 손을 잡고 교문 밖을 나선다. 혹시라도 등굣길에 친구라도 마주치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달려 나간다. 아이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왜 좋냐고. 친절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물었다. 그 친구는 너를 왜 좋아하냐고. 아이가 대답했다. "내가 말이 많아서?" 


친구는 순한 아이다. 친절하다. 화를 내는 법이 별로 없다. 친구의 핸드폰을 아이가 스리슬쩍 만져도 개의치 않는다. 핸드폰이 없는 아이는 친구의 핸드폰을 손에 쥐고 다닌다. 친구에게 줘,라고 얘기해도 친구가 허락을 했다고 한다. 아이는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이것저것 자랑을 한다. "우리 집에는 영어 책이 정말 많다! 몇 권인지 세어봐." 그럼 또 친구가 영어 책을 세어본다. 아이가 영어 책 한 권을 몰래 숨긴다. 뭐 그런 식이다. 


최근 그 친구를 두고 같은 반 아이와 경쟁이 붙었다. 친구 한 명을 두고 내 아이, 그리고 다른 아이가 옆에 서겠다고 실랑이를 했다는데, 아마도 내 아이가 승리했나 보다. 다른 아이의 엄마를 통해 그 친구와 놀지 못해 서운하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자기도 그 친구랑 옆에 있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내 아이가 자꾸 자신에게 날 선 반응을 보인다고. 화를 낸다고. 아이에겐 하나밖에 없는 베스트 프렌드. 그리고 그 베스트 프랜드와 친해지길 원하는 또 다른 아이. 어떤 면에서는 내 아이보다 그 친구에게 더 어울릴 차분한 아이. 나는 가끔 두렵다. 이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만으로 여덟 해를 살았는데 그중 4년을 함께한 친구였다. 말 그대로 인생의 반을 보낸 친구. 순하디 순한 친구는 아이가 화를 날 때마다 차근차근 따진다. "왜 네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네 말만 하는 거야?" 아이가 시원하게 대답한다. "미안해." 그리고 다시 또 재잘재잘 자기 말만 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 위태로운 기울기가 두렵다. 


수백 번, 수만 번 강조한 말. "화가 때는 짜증내지 말고 화났다고 해줘. 그렇게 못할 같으면 그냥 다른 혼자 있다가 화가 가라앉으면 와. 그때 화난 이유를 말해도 괜찮아. 엄마한테도, 제발 그 친구에게도!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물론 이 조차도 대단히 지키기 힘든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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