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해나 루이즈 벨처
마스킹, 위장을 중심으로 본 자폐 성인의 사회생활 실용서
이 책을 쓴 작가는 스물세 살, 자폐의 한 갈래인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다. 자폐를 인지하지 못한 시절에는 우울증이나 조울증(양극성장애), 범불안장애라고 자체 진단을 내렸지만, 시간이 지나 스스로 자폐라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자폐라는 사실을 인지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위장’을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는 여성. 자폐 스펙트럼은 남성이 여성보다 유병률이 4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폐 여아가 속으로 끙끙 앓으며 불안해하고 말수가 없어지는 반면, 자폐 남아는 자신의 투쟁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지나치게 활발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또한 자폐 여아보다 제한적 반복 행동을 더 많이 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 부모님, 의료진이 남자아이들의 자폐 징후를 훨씬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은 여성의 자폐 진단이 늦은 이유에 관한 주요 이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P56
‘위장’이란 다른 말로 마스킹, 가면을 쓴 채 자신을 감춘다는 뜻이다. 작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게 어려워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속으로 숫자를 세어야 했고, 손을 반복적으로 흔드는 행동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그만두었다. 말에 높낮이를 더하고 그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제스처도 배웠다. 쓸 만한 문구 몇 개, 대화거리, 적절한 반응까지 미리 고려했다.
물론 비자폐인도 위장을 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하는 행동이 모두 다른 것처럼 상황과 장소에 따라 원래 자신과 다른 사회적 가면을 쓴다. 그런데 자폐인의 위장은 비자폐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소한 것,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바자폐인은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위장이란 기술을 사용하지만, 자폐인은 이 같은 위장이 개인의 정체성을 해칠 만큼 강하게 일어난다는 게 핵심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라면 모두 남을 복제하고 모방하며 학습하고, 자기 행동이 ‘전형적이지 않아’ 고립감을 느낄수록 더 많이 모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했기를 바란다. 그래서 비자폐인은 타고난 행동을 모두 숨길 필요가 없고 오랫동안 심하게 위장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처럼 오랫동안 위장이 일상이었다간 탈진에 이어 ‘번아웃’까지 겪을 것이다. P203
그렇다고 작가가 위장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위장은 나름대로 유용하고 위장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자폐 아동은 자폐 특성을 접한 타인의 부정적 반응을 보고, 외부의 시선과 괴롭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폐를 숨기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이런 위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선까지 강하게 일어나서는 안된다 .
위장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위장은 인간이라면 모두 성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이며 하나의 생물 종으로 사회화를 배운 방식이기도 하다. P20
위장은 도대체 왜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걸까? 두 가지 핵심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위장이 정신적으로 꽤 지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진정한 자아를 숨기면 자존감과 정체성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P79
위장은 정신적으로 고된 활동이다. 위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정한 자아를 숨기면 자존감 및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위장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의 모습에 공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본모습을 감추더라도, 나의 본모습은 여전히 가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해답은 자기 공감과 마음 챙김에 있다. 나의 감정을 피하지 말고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나를 비난하기보다는 품어줘야 한다. 자책도 삼가고 타인의 평가 또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자.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과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자폐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자폐 정체성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자폐든 비자폐든 내가 가진 나만의 정체성을 찾고 이를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폐인은 불안감과 우울함에 훨씬 취약하나, 자폐 정체성이 긍정적일수록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처럼. 이건 비자폐인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으니까.
결국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는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