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또렷해지는 취향 중 하나가 영화 취향인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씨네큐브’에서 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평일에 오후 반차를 내고 혼자서 드문드문 채워진 적막하고 어두운 객석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꼭 쥐고 자리해야하는 곳.
영화 줄거리를 미리 찾아보지 않고 영화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느낌으로만 영화를 골라도 항상 성공하는.
지독한 캬라멜 팝콘 냄새도 없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참 상쾌한.
그런 느낌의 영화가 나에게는 ‘씨네큐브’ 영화다.
요즘은 광화문 씨네큐브까지 나가지 않아도 라이카 시네마와 아트하우스 모모까지 집 근처에 있어서 시간만 있으면 언제든 ‘씨네큐브’ 영화를 볼 수 있다. 아, 넷플릭스도 한몫한다. 이런 ‘씨네큐브’ 감성의 영화를 최근 여러 편 볼 수 있었다.
1)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 앵거스 털리 역의 도미닉 세사는 아직 모든 것이 불완전한 “청춘”의 모습 그 자체다. 폴 지아마티가 연기한 역사 선생님도 너무나 찰떡이다.
2) 리빙 보이 인 뉴욕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이 영화 역시 주인공인 칼럼 터너 자체가 "청춘"의 모습 그대로인데, 사십대에게 보이는 스무살의 방황과 고민이 그저 귀엽고 자잘하다. 제프 브리지스, 피어스 브로스넌이 참 멋있게 늙었다는 생각.
영화에 등장하는 서점과 피어스 브로스넌의 사무실 공간이 정말 감각적으로 꾸며졌다.
3)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오펜하이머'로 인상이 깊은 킬리언 머피가 제작하고 주연까지 맡은 영화. 그의 옆 얼굴에 영화 한글 제목 텍스트가 커다랗게 배열된 포스터가 인상적이라서 골랐는데 어두운 감성조차 분위기 있게 전달한다.
주제는 조금 무겁지만 2024년에 1980년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4)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의 등장만으로 선택한 영화. 둘 다 너무 좋아하는 여배우인데다가 뉴욕이 배경으로 나오는 것도,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이 타이트하게 잡히는 구도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암환자임에도 스타일리시한 틸다 스윈튼의 의상을 감상하는 것도 포인트. 영화가 너무 좋아 원작 소설도 사고 대본도 찾아서 읽는 중.
“I swing between euphoria and depression.”
정확하게 올 한 해 내 상태.
5) 레이니 데이 인 뉴욕 Rainny Day in New York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스무살 감성에 함께 애틋한 사랑을 느꼈던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 York'부터 대학생 때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봤던 '왓위민원트 What Women Want',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그리고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인턴 The Intern'까지. 아직까지 뉴욕을 가보지 못해 뉴욕은 언제나 동경의 도시로 남아있다. 지금 뉴욕에 간다면 아마 미술관, 박물관에만 처박혀있다가 돌아오겠지만.
티모시 살라메의 매력적인 눈빛과 너무나 멋진 의상, 간간이 등장하는 실내 인테리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뉴욕의 집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센트럴파크 그리고 배경 음악과 뉴욕 그 자체. 비오는 날 감상하기에 딱 좋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