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구본창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도슨트 교육 때였다. 구본창 작가의 <비누> 시리즈 중 한 작품의 전시해설 스크립트를 작성하는 과제가 있었다. 작품은 겉은 바싹 마르고 갈라져 원래의 분홍빛마저 다 잃어버린, 닳고 닳아 동전만큼 작아진 비누 조각 사진이었다. 오래전 공중화장실에서나 봤을 법한 이 낡은 비누 조각에 담긴 의미를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라져 가거나 점점 희미해지는 것들은 언제나 내 시선을 붙들었다. 끊임없이 소멸하는 비누 또한 이렇게 내 사진의 대상이 되었다. 비누를 결코 하찮은 것이라 밀어 놓을 수 없었던 이 끌림의 시작은, 몸집을 잃어가는 모든 존재에 조각된 시간의 흔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문기사에서 찾은 <비누> 사진집의 서문이다. 구본창 작가는 대가족 안에서 태생적으로 느끼게 된 외로움 때문에 주변 사물에 대한 애착과 애정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진 이미지로 담게 되었다고.
<비누> 시리즈만큼 <백자> 시리즈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려시대 화려했던 상감기법의 청자는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자취를 감추고 순백의 백자가 태어난다. 때로는 덜 드러내는 것이 더 아름다운 법이라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째 노래를 부르고 있는 달항아리를 이제는 구본창 작가의 사진작품으로 갖고 싶어졌다. 고운 유약을 바르고 이제 막 가마에서 나온 반짝이는 새 달항아리보다, 표면 곳곳에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작가의 달항아리가 더 멋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가 백자를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지만 그 시작은 훨씬 오래전이었다. 1989년, 영국 도예가 옆에 마치 버림받은 사람처럼 서글프게 서 있던 조선 백자 사진 한 컷. 그 백자는 고향을 잃은 채 낯선 땅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안타까운 감정은 오랫동안 작가의 가슴속에 묻혀있다가 2004년 일본의 한 여성잡지에 실린 백자 특집 기사를 보고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때 여전히 해외로 흩어져 떠돌고 있는 우리 백자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과거에는 지나쳤던 일이지만 현재 나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새롭게 바라보고 접근할 수 있다. 신선한 감각과 두근거림이 찾아오는 일이라면 우리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