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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한밥상 Aug 23. 2022

소수자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이너리티 디자인'

시부야역에 그의 광고 카피가 도배될 정도로 일본 광고회사의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 그러나 그는 광고가 자본주의의 페이스메이커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광고를 만드는 일이 어느새 반복적인 일이 되고, 당면한 과제는 아무런 의문 없이 단순 작업처럼 처리하는 날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아들이 생후 3개월 만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큰 좌절에 빠진다. 그러나 아들 덕분에 소수자의 시각에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방향의 일을 시작하며 그 과정에서 발견한 '마이터리티 디자인' 개념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삶이 한 번쯤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 본 사람만이 잠시 멈춰 서서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 멈춰 서서 획일화된 세상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동안 굳게 믿어왔던 사실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되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고 결코 편한 길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주어진 삶 자체에 만족하기도 한다.


작가는 긴 시간을 들여 자신의 뇌를 갈아 넣어 만든 광고가 불과 1, 2주밖에 광고판에 걸리지 않는 것이 마치 비눗방울을 무한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고 말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작가와 비슷하게 덧없음을, 혹은 허무함을 느끼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체념하는 삶을 그만두기로 하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이나 귀촌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재능의 사용법 전환을 통해 자신의 본업인 광고업계에서 기른 능력을 다른 곳에서 사용하기로 마음먹는다. 누군지 모를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위한 일, 그리고 쓰고 버리는 패스트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로 생각을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이 세계는 말로 규정되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세계에 갇혀 있던 것을 발굴하고 긍정적으로 다시금 정의하여 가장 좋은 형태로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너리티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가치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에서 다루고 있는 소수자란 아직 사회의 주류에 올라타지 않은, 이어질 미래의 주역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해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각자 자기 다운 약점을 서로 교환하거나, 갈고닦거나, 보완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말이다. 소수자야말로 사회를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단서를 지니고 있다.


'세상일이란 다 그런 법이야.'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 곤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시작이다. 안경이 개발될 때까지 눈이 나쁜 사람은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안경은 개성과 패션의 표현 수단이다. 단 한 사람의 필요가 새로운 디자인과 '미'를 낳은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비만을 낳았고, 패스트패션은 의류의 대량 폐기 문제나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라나 플라자의 비극'이 상징하는 가혹한 노동 환경을 낳았죠. 빨라서 무언가 좋은 것이 있었나요? 별로 없지 않나요?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걸 하는 한 손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창업자 구리노 히로후미)


결국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사회의 문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몰입했던 광고라는 일은 애초에 강했던 것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강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그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일의 규모가 커질수록 고객의 모습은 흐릿해진다.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리고 그 고객들 역시 원하는 것을 구입하는 것에만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 고객의 손에 닿지 않고 폐기되기도 하는 세상.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조금씩 열의가 식고, 창조성이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람은 어른이 될수록 상식을 알고, 규범을 배우고, 사회를 겪으면서 창조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의 서랍에 넣어두었을 뿐이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더욱 본질적인 것에, 진심으로 원하는 것에, 자신이 지닌 재능을 쏟아부을 수 있는 프로젝트. 나의 재능을 사용하는 방식에 문제는 없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이 지닌 경험과 기술이 있다.


방향 1. 본업에서 기른 능력을 본업 밖에서 활용하기

방향 2. '대중적'인 것,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단 한 사람을 위한 것

방향 3. 쓰고 버리는 패스트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


마케터의 일이란 더 이상 데이터 분석이나 시장 조사가 아니다. 지금까지 없던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차례차례 과제가 튀어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뇌성마비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일상생활이 곤란한 원인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재활을 해서 당신을 건강한 상태로 만듭시다." 하는 것은 의료적 모델이다. 반면 "일상생활이 곤란한 원인은 사회에 있습니다. 그러니 길의 높이차를 없애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합시다." 하는 것은 사회적 모델이다.


빠르고 Speed, 크고 Scale, 짧은 Short 아이디어에서 느리고 Slow, 작고 Small, 오래 지속되는 Sustainable 아이디어로 전환해보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며 아주 작은 순환이라도 일어나길 기대하며 일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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