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오잡 Mar 28. 2024

반짝 반짝

별은 내 가슴에


어릴 때도 늙은 지금도, 나는 흔한 인간이다. 속은 아무생각이 없고, 겉은 꾸밀 줄 몰라 어설프다.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외양을 가꾸는 일인데, 많은 여성들이 정성있게 또 성실하게 잘 하는 분야라 더욱 위축된다. 여중여고로 이어지는 의무교육시절에 나는 외모에 관심이 남다른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피부도 손톱도 매끄럽고 향기로운 그녀들을 내심 부러워하긴 했지만, 만화책과 OVA, 무협지를 보느라 너무 바빠서 거울 볼 시간이 없었다. 


얼떨결에 간 대학에서 첫번째 충격을 받았다. 교복을 입던 고등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꾸밈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센스와 안목이 부러워지고 높은 관심과 노력을 흉내내려 했지만 정성없는 인간이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라, 한계는 빠르게 찾아왔다. 아직도 어이없는 것은 입학초반에 꽤 많은 친구들이 나를 체육특기생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츄리닝을 자주 입고 다녔을 뿐인데. 나는 단지 친절하지 않게 생겼을 뿐이다.


회사에 입사하자 2차 충격이 왔다. 나는 인사부의 일개미였는데, 행정부서라 여직원들이 많았다. 20대의 여자들은 대부분 그렇듯이 이쁘고 사근사근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눈이 번쩍 뜨이는 존재들이 몇 있었다. 뽀얀 피부, 윤기나는 머리카락, 한 줌 허리와 사뿐사뿐한 걸음걸이. 저 정도면 외모를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똑같은 노동복을 입고 있었지만 우리는 같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이 부러워서 나도 머리를 길러보려 머리 빨리 자라는 샴푸를 샀었다. 술을 좀 덜 마시면 내 피부도 빛이 나려나 해서 오늘부터 내 이름은 금주라고 주위에 선언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살랑살랑해 지기에 내 머리카락은 너무 귀찮았고, 나긋나긋해 지기에 나는 힘이 너무 쎘기 때문에 그냥 다시 술을 마셨다. 


타부서의 아는 청년들이 난데없이 친절하게 굴며 미팅 좀 시켜달라고 말하는 일이 잦아졌다. 점심먹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을 잡고 연락처를 물어보는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술집에 가면 왜인지 우리 주위를 맴도는 존재들이 생겼다. 아름다운 외모는 내가 추측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반짝이는 외모만큼이나 반짝이는 마음들이 쏟아져 눈에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비록 내가 향단이/방자/웃긴 선배 포지션인건 좀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의 드라마가 너무 설레고 재미있었다. 내가 미는 커플링이 잘 되길 빌면서 사심가득한 조언을 했다. 우리는 20대였고, 모두가 사랑스럽게 반짝였다. 


나이가 들고 생활과 환경이 바뀌고, 이제 눈부신 외모의 존재들은 내 일상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반짝이는 사람들을 본다. 라식수술 덕분인지 이제 나는 생각과 태도가 빛나는 사람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양보를 귀찮아 하지 않는 사람들, 봉사와 기부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짧은 인터뷰를 통해 만나는 환경운동가, 그늘에 가려진 어두운 삶을 취재 하는 기자,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뉴스의 수화통역사, 제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는 고등학생, 시키지 않아도 솔선수범하는 평사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옳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 잘못된 것에 목소리 높일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 이 사회를 이루는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좋은 사람들. 내가 몰랐을 뿐, 세상은 반짝임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각자의 방식과 각자의 능력으로 반짝이는 사람들이 세상을 반짝반짝하게 꾸려 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반짝이는 빛을 늦게 알게 되어 아쉽긴 하지만 또한 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다. 빛나는 법을 몰랐던 내가 아쉽지만 이제라도 눈이 밝은 사람이 된 것에 만족한다. 나는 돌이켜보고 감사하고 지켜보고 칭찬하고 미리 보고 인정할 것이다. 

 

눈부신 세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House of Memori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