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초록마을. 그 어디쯤에 자리 잡고 글을 쓰고 있다. 초록마을은 무슨 의미일까? 그러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 번지가 생각났다. 547번지. 어디였을까.
기억이 났다. 547번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내가 살았던 곳. 그 단독 주택의 주소였다. 지금은 가볼 수 없는 곳. 아니, 존재하지 않는 곳.
부랴부랴 N사의 지도 어플을 켜고 주소를 입력해 보았다. 검색이 된다. M아파트 8단지로 검색되었다. 546번지도, 548번지도 같은 아파트 단지로 검색이 된다.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
경사가 급하진 않았지만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었던 그곳은 긴등마을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긴등 다리가 있어서 긴등마을로 불렸다. 정작, 그 다리는 본 적도 없건만.
긴등마을 547번지는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연탄을 떼던 곳이었고, 연탄아궁이를 끼고돌면 나오는 비좁은 공간에는 닭 두 마리가 살고 있기도 했다. 여름이면 마당에 포도가 대롱대롱 열매를 맺었고, 겨울이면 작은 밭이 김치냉장고가 되어 주었다.
'손'은 당시 우리 집의 옆골목에 살았다. 빙 돌아서 가야 하지만 우리 옆집 담을 넘어 대문으로 나가면 손의 집 대문이 나올 정도로 가까웠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손과 나는 긴등마을 주민이었고, 둘 다 키가 컸던 탓에 혹자는 등이 길어 긴등마을이냐는, 세기말에 어울리는 농을 건네기도 했더랬다.
지금은 손도, 나도 긴등마을에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오래 그곳을 잊고 지내왔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으면,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지금도 생생한데 말이다.
얼마 전, 손을 만났다. 그와 나는 한 달 정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났는데, 그의 아이와 우리 아이 또한 한 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났다. 아이들에게 긴등마을을 보여줄 순 없겠으나. 이야기는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긴등마을 547번지라는 곳이 있었다고. 아빠의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