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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Jun 23. 2022

비와 우산

장마가 시작된다.

나의 출근길은 아침에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회차점에서 내려 10분 정도 걷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침에 웬일로 6시에 일어나던 아이가 7시 30분에 일어나 나도 그 시간에 일어나 준비만 하고 집을 나섰다. 거실에 TV가 없어 뉴스를 보지 않는 데다가, 오늘따라 핸드폰으로도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나와서일까. 회차점에 도착할 즈음, 버스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빼곡히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우산...


가방을 열고 평상시에 가끔 들고 다니던 3단 우산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결국 회차점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구매했다. 5000원이었다. 예전엔 3000원이었던 것 같은데 그새 많이 올랐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더 쌌던 것도 같고, 더 예전엔 손으로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 파란 우산을 쓰고 다니기도 했다.


우산을 보고 있으니 노래가 떠오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빨간 우산'. 원곡은 아니지만, 럼블피쉬가 리메이크한 노래를 즐겨 듣곤 했었다. 그리고 에픽하이와 윤하가 협업했던 '우산'도 뒤따라 떠올랐다. '우산' 하면 떠오르는 노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우산 노래를 듣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에는 '벚꽃 엔딩'이 있다면 여름, 장마철엔 무슨 노래를 들을까. 


그러다가 비와 관련된 기억들도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비가 오는 골목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맞던 일, 대학생 때 학교에서 기숙사까지 장대비를 우산도 없이 쫄딱 맞으면서 걸어갔다가 친구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일, 군대에서 비가 오는 날 우의를 입고 수류탄 자세 훈련을 한다고 땅을 뒹굴고, 각개전투 훈련에서 열심히 물구덩이를 포복으로 지나가던 기억들까지.


그래서일까. 군대에서 제대한 이후로는 비가 오는 날에는 가급적 외출을 하지 않는다. 비를 맞는 게 싫기도 하고 우산을 쓰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있던 약속도 아주 중요한 약속이 아닌 다음에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시 장마가 시작된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비가 오면 나는 추억을 꺼낼 것이다.


그때의 나는 올해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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