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 건강하오.
'깨똑. 깨똑'
연말이 되니 단톡방들이 시끌벅적하다.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 열몇 명이 참여하는 단톡방은 평상시에 조용하다가도 한 번 발동이 걸리면 어느새 안 읽은 메시지가 수십 건이 넘어간다. 아이를 재울라치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알림 소리에 무음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 단톡방에는 긴등 마을 친구 손도 있고, 이 글의 주인공, 임도 있다.
임은 양과 마찬가지로 나와 함께 같은 초(국?), 중, 고를 나온 몇 안 되는 친구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국민학교 1학년 때와 6학년 때,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다. 심지어 중, 고등학교 때는 6년 동안 매번 다른 반이었다. 그런 임과 나를 이어주는 곳은 학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학원에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풀어놓아야겠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학원 OB 모임을 만들면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 '부회계'라는 비공인 직책을 혼자 수행 중이던 임은 1년 후인 2003년 1월 군대를 가게 되었다. 우리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입대하는 그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는 친구 훈의 어머님이 하시는 호프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내 후드 점퍼에 시원스럽게 피자를 한 판 만들어 놓으셨다. 그렇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채 그는 사라졌다.
임이 전역을 하고, 내가 군대를 가고, 전역한 이후로 임은 두주불사(<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말술도 사양하지 않는 조연 캐릭터이다.)의 캐릭터와 내기를 좋아하는 캐릭터로 진화했다. 주로 학원에서 일하는 신과 함께 셋이서 어울리곤 했는데,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나면 임은 항상 노래방을 갈 것을 주장했다. 임은 노래방에서 옛날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김민종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곤 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가진 임은 IT를 공부한 프로그래머이다. 한 번은 XX랜드로 파견을 1년 여 동안 나가기도 했다. 덕분에 당시 신혼이었던 신 부부와 함께 강원도에 있는 임에게 놀러 가기도 했다. 그날 술을 미친 듯이 먹고 나서 다음 날 정작 XX랜드 구경을 못 한 건 비밀로 남기도록 하자. (임은 직원 관계자여서 출입이 안 돼, 둘이 같이 남아 있었다.)
이번 연말, 어김없이 단톡방이 불을 뿜던 그때, 임은 우리에게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결혼 소식이었으면 참 좋았을 것을. 건강이 나빠져 조만간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돌아보니 빠르면 7살, 8살. 늦어도 10대 중반에 처음 만났던 우리가 어느덧 40이 되었다. 슬슬 아플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그날은 마음이 울적하고 속이 상했더랬다.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친구 임이 건강해지기를. 다시 두주불사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라도, 어느 날 문득 만나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