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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Aug 02. 2022

산책이 영혼을 구원하는 순간들  : 노을

세 번의 노을

너와는 이곳을 2번 걸었다. 언젠가의 여름밤에 한 번 그리고 며칠 전의 밤에 한 번.

같은 산책로였지만 방향만 다르게 걸었다. 그래서인지 너는 꽤나 상세하게 이곳을 걸었던 언젠가의 여름밤을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기분 좋은 쪽의 것인지 아닌지 모를 놀라움을 느꼈다.

이 산책로의 별미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노을'이다. 해가 강을 넘어가며 한강의 물결과 주위의 높고 낮은 건물을 물들이는 장면은 언제 봐도 새롭고 짜릿하다. 산책로를 걸어 이 포인트를 통해 한강을 빠져나오는 루트로 걸었기 때문에 꽤 늦은 시간 만난 우리는 노을을 보지 못했다. 아쉬워했다.


그 이후로 나는 너 없이 세 번의 노을을 봤다. 두 번은 각각 다른 사람 혹은 사람들과 함께였고 한 번은 혼자였다. 나는 그 혹은 그들과 함께였고 또 혼자였지만 그 포인트에서 노을을 볼 때면 왜인지 네 생각을 했다. 어색한 동작으로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노을 사진을 찍었다. 세 번 중 첫 번째에는 '그때 못 봤던 노을이 이렇다'라고

사진을 보낼까 생각했다. 노을을 보고 너와 걸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고 아쉬워했던 우리의 마음을 기억하고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근거 없이 기분 좋게 붕 뜬 마음이었다. 사진을 네게 보내면 어떤 반응이 올까.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대로 침잠했다.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답장을 보내올까, 자신을 생각했다는 것에 좋아할까 싫어할까, 오해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좋았다가도 답장에 신중하게 될까. 그게 어떤 기분과 생각에서 비롯된 내용이든 나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모르고 싶었다.


언젠가 너는 내게 '정말 신중하다'라고 했다. 사진을 보낼까 고민했던 그 순간에, 아니 언젠가의 여름밤과 며칠 전의 밤 사이의 수많은 순간들에 내가 신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떨까. 덮어두고만 싶은 너와 나의 마음과 시간들이 시끄러워서 조금 더 걸었다. 지금은 온전히 나 하나만으로 소란스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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