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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Jan 30. 2023

누와

자신을 대접하고 싶은 곳

‘혼자였던 때의 내가 기억나지 않아.’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딸이 잠든 방을 뒤로한 채 나는 중얼거렸다. 아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개척하고 만들어가며 자라고 있다. 부모로서는 더없이 기특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부모가 아닌 나의 혓바닥 끝은 이상하게 씁쓸했다. 아주 고약한 자아의 맛이었다.

아이의 체험학습 과제를 위해 경복궁에 갔던 날, 서촌 골목길을 걷다 문득 이런 곳에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 했던 기억이 났다. 오롯이 나로, 혼자 서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인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대학생 때 한참 가고 싶은 곳들을 동네별로 저장해놓곤 했다. ‘서촌’ 폴더를 열어 누와를 발견했다. 예전에 저장하면서도 그곳에 가고 싶어 설레던 마음이 그대로 복원되며 살아났다. 평일 취소 물량을 겨우 잡아 예약하고서는 들뜬 마음 위에 앉아 매일같이 틈만 나면 누와의 후기며 사진을 들여다봤다.


예약 당일 아침, 나는 우선 엄마로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등교시켰다.

그리고 오늘은 엄마 없이 잠자리에 들 거라는 말을 했다. 아이는 서운한 기색 없이 할머니네 있는 강아지 초롱이를 볼 수 있다는 게 그저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아침 일과를 마치고 집을 나오면서부터 내가 되었다.


오후 4시, 한 권의 서점이라는 곳에서 체크인을 하며 체크인 키트라는 걸 받았다. 엽서와 연계 가게의 쿠폰, 그리고 서촌유희 컨셉에 대한 간략한 소개서. 그리고 덴마크 에디션에 들어가 예약해 둔 조식을 픽업했다.


이내 시간에 맞춰 누와에 발을 들였다. 서촌 골목을 지나 비밀스러운 누와의 입구를 열어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그마한 정원이 있었고 그 뒤로 누와의 시그니처인 침실과 연결된 동그란 창문이 있었다. 방문이자 통창인 창문을 열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잔잔히 흐르는 노래와 졸졸 흐르며 받아지고 있는 욕조의 물소리는 체크인 웰컴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고요를 발견했다. 이 작은 집 안에 흐르는 고요가 낯설고 반가워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내가 있는 모든 공간은 아이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아이를 위한 소리들로 가득 차 고요가 부재했다. 잊고 있었다. 준비된 선곡 리스트를 둘러보고 나를 위한 소리를 그 고요 속에 조금씩 채우며 누와에 준비된 것들을 하나씩 소중하게 둘러봤다.


이 집만을 위해 짜인 수납장과 욕조가 가장 눈이 띄었다. 중앙 거실에 놓인 목조 테이블과 그 위에 정갈하고 다채롭게 구비된 다기들은 하나같이 집에 가져가고 싶었다. 그 옆으로는 바닥과 연결되어 한 단 아래로 파인 욕조가 있어 바닥에 앉은 채 발을 담가 족욕을 했다. 그 옆에 구비된 방수 책을 스윽 훑으면서 누와에 향기, 고요, 시간을 조금씩 내 안으로 흡수했다.


근처에 봐둔 가게에 들러 혼자 아이스크림도 한 컵 먹고, 스콘을 사 와 누와에서 먹었다.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통창으로 바라보는 서촌 하늘 풍경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게 해서 서촌 핫플들을 가겠다는 당찬 포부는 자연스레 내려놨다.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다도를 했다. 다도 안내서가 있었는데, 다도를 처음 해보는 입장에서 준비된 다기와 차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어 이를 꺼내 들었다. 쉽게 설명된 콘텐츠를 읽고 따라가며 차를 내리고 마셨다. 그리고는 하루 동안, 그리고 지금 온전히 혼자인 일을 복기하며 혼자됨에 대해생각했다.


타인과 함께일 때 마주 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일 때 고요 속에서 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도 있다. 후자를 꽤나 놓쳐왔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이렇게 고요할 수 있는 환경에 있던 적이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정말 없었다. 좋은 곳, 좋은 것을 할 때는 늘 타인과 함께 나눴다. 그리고 점차 그 좋아함의 주체는 내가 아닌 아이로 바뀌었다. 그랬기에 더 좋은 추억이 많지만 혼자라고 아무렇게나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혼자인 자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혼자일 때는 혼자이기에, 더욱 자신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함을 이제 안다. 고요한 집안 따듯한 차 한 잔과 함께 새로운 생각과 관점이 피어올랐다. 혼자였던 때의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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