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거주하게 될 곳은 근무지까지 걸어서 5분, 뛰면 2분 만에 도착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직장과의 거리에 한 번 놀라고 보증금과 월세에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기도에서 살았던 곳들에 비하면 보증금은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며 월세는 4분의 1. 독립 이후 지금껏 주거에 들어간 모든 비용이 한낱 부질없게 느껴진다.
출근 전에는 운동도 할 요량으로 동네에 단 하나 있는 헬스장도 등록을 했다. 잠들기 전, 오전 7시에 울리도록 맞춘 알람. 다음 날 아침 7시경에 8시 30분으로 변경된다. 아침 운동은 물 건너갔다.
욕실로 어그적 어그적 들어간다. 온수가 나오기까지는 2분가량. 약하게 물을 틀어 놓고서 감은 눈으로 양치질을 한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나와 출근 전용 옷을 입으면 대략 8시 42분이다. 7분간 세상의 뉴스들을 접하며 영양제 섭취를 하고 집에서 나서면 8시 52분이다.
8시 57분쯤 약국에 도착해 머리를 묶고 가운을 입고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 오전 9시. 이제 약국에서의 일이 시작된다.
이 약국은 약 30년 전부터 운영된 곳이다. 단골손님이 많고 동네 주민들이 아프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찾아오는 사시사철 푸르게 그 자리를 지키는 상록수와도 같은 곳이다.
약국으로 들어서는 어르신들은 새로운 얼굴에 반가움의 표시로 다양한 인사말들을 건네신다.
“아이고, 여기는 처음 보는 얼굴이네?”
“네, 새로 왔어요. 이번 주부터 일 시작했어요.”
졸업 후 약국 근무가 처음인 나는 꽤나 많은 어려움들에 봉착했다. 우선 상상이상으로 내가 일반 의약품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첫 주에는 그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근무 중간에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를 했다. 퇴근 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빽빽한 글자들을 눈에 넣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두 번째 애로사항은 전(全) 자동화 시스템으로 굴러가던 병원에서 손으로 일일이 약들을 조제해야 하는 수동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재학시절, 봉사활동에서 좀 해보긴 했지만, 밀려오는 환자들의 약을 이렇게 쉼 없이 조제하다니. 어느 순간 손가락이 덜덜 떨리며 마비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검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 사이로 약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 사이에 걸쳐져 나갈 기미를 안 보이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가 더 많았다. ‘손가락 살을 좀 빼야 하나.’라는 실없지만 진지한 고민도 했다. 물론 손가락 살만 빼는 운동 같은 건 없겠지만.
세 번째는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기준으로는 좀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다. 경상도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투리를 아예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다. 저마다의 속도와 높낮이로 원하는 용건을 말하는 게 왜 이리도 내겐 벅찬 건지.
「인후두염」을 「역류성 식도염」으로
「드레싱 밴드」를 「알코올 스왑」으로
「검 가드」를 「금 가든」으로.
(검 가드는 동아제약에서 나오는 잇몸 질환용 제품이다.)
손님이 아무리 조용하게 이야기해도 척하면 척 알아들어야 하는 능력이 중요한 직업인데 그 ‘척’이 되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랄까. 재밌으면서도 슬픈 점은 몇 번이고 귀 기울여도 안 들린다는 것이다. 손님과 나 사이의 투명한 벽 때문인 걸까. 보이지 않는 몇 개의 벽이 몇 겹이고 더 세워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