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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박 Dec 16. 2020

마케터로 일 년 차, 소감이 어떠세요?

취뽀 후 일 년, 드디어 되돌아보는 지난 날들 - 1. 인턴 이야기

    "인턴사원들은 A타워 로비에 8:30까지 집합해주시기 바랍니다. 복장은 비즈니스 캐주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진 3년 전, 회사라는 공간에 처음 발 디뎠던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비캐"가 무슨 말인지 몰라 네이버에 검색해보고, 평소 거들떠도 보지 않던 로퍼 구두를 사 신고, 콩나물시루처럼 바글바글한 만원 9호선을 타고 내 인생 첫 직장을 찾아갔던 날. 한 손에는 스마트폰, 다른 한 손에는 랩탑을 들고 영어와 한국말을 번갈아 쓰며 바삐 움직이는 사무실 사람들. 너무 바빠서 아직 학생티도 못 벗은 어리버리 인턴들을 반겨줄 여력도 없는, 그런 쳇바퀴 같던 사무실이 기억난다.

달려라 달렷-

    그때는 그 바쁜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각자 정해진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해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그저 직장인이라는 게 그렇게 부러웠다. 매달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삶, 월급 받으면 친구들이랑 곱창에 소주 한번 먹으러 갈 수 있는 그런 삶, 회사 스트레스를 백화점 화장품 사는 데 풀 수 있는 그런 삶이 부러웠다.


    그리고 직장인임을 인증하는 사원증, 지금 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지만 그 사원증이 부러웠다. 인턴으로 다녔던 회사는 인턴들에게 정규직 사원들이 쓰는 사원증이 아닌 방문객용 출입증을 줬다. 정규직은 빨간 줄, 인턴들과 외주 업체 직원들은 주황색 줄.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커피 한 잔 하러 라운지에 나올 때, 괜스레 그 사원증을 목에서 빼 주머니에 찔러 넣곤 했다.


    사실 그때는 마케터라는 직업보다, 그저 직장인이란 게 부러웠다. 마케팅 부서의 인턴으로 일했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제품을 포장하고 퀵 보내는 데 썼다. 아무도 없는 지하 창고에서 박스를 나르고 정리하기도 했다. 아 물론 여러 가지 번역하는 일도 맡았지만, 내 영어 실력만 갈고닦았을 뿐 딱히 마케팅이라는 일을 배운 적은 없었다. 내 옆에 앉은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들이 딱히 무슨 일을 하는지 솔직히 그들의 입을 통해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뭐, 간간히 번역하는 자료가 마케팅 기획서였을 때, 또 콘텐츠 카피를 수정하는 일을 맡았을 때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남몰래 속으로 좋아했던 기억은 난다.


    그 회사의 모든 인턴들이 나 같은 생활을 했나, 또 그건 아니었다. 인턴 중에도 성골이 따로 있었다. 인턴 기간 끝에 정규직 전환이 걸려있는 그런 성골.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산학 연계 체험형 인턴이었다. 인턴 중에서도 진짜 인턴은 아닌, 정규직은 꿈도 못 꿀 육두품인 셈이다.


    나 홀로 성골 인턴이라 불렀던 그들은 따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마케터를 희망하는 인턴들은 그 회사에 속한 브랜드 하나를 잡고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들은 두 달간 프로젝트를 해내고, 평가받고 정규직이라는 이름을 걸었다. 그들이 정규직 직장인이라는 메달을 목에 걸 때, 나는 묵묵히 6개월을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렇게 나의 3년 전 인턴 생활은 "보이지 않는 선"이 테마였다. 그리고 나와 다른 육두품 인턴들은 그 선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선 사람이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을 대하는 회사와 사람들의 태도는 그리 사려 깊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노골적이었다. 또 노골적이기에 회사라는 사회 안에 속한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기 쉬운 위치에 설 수 있다. 어차피 보지 않을 사람이기에 예의를 조금 내려놓는 사람과, 반대로 마지막까지 줄 수 있는 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 사람. 이 두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후자의 경우 얼마나 진한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것. 이것이 내 첫 직장 생활, 인턴 생활에서 얻은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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