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동생이 최근 하버드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듣자마자 오랜만에 누군가 부럽다는 배알이 꼬이기 시작해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나라는 생각도 고개를 들어 씁쓸했다. 누구는 보스턴에서 캠퍼스를 밟고 있는데 누구는 한국 단톡방에서 영화 스포 시시비비나 가리고 앉아 있다니, 할 일 더럽게 없구나 라는 자괴감까지 더해져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다 결국 화가 나 버렸다. 여기서 뭐하고 앉아 있니 너. 하면서.
최근에 과거의 인연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온다.
코로나가 끝나서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전혀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탄 탓인지, 그 연락들이 기질적으로 I인 나에게는 감당이 안되는 수준으로 많이 온다. 기쁘고 반갑고 즐겁고 행복하지만, 갑자기 걸어가다가 폭포 맞는 것 같달까. 물론 전반적인 감정은 즐거움이다. 다들 멋지고 예쁘고 좋은 사람들이다. 왜 이 사람들과 그동안 연락을 안하고 살았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물론 그 안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그냥 다 그래, 인간은 다 그래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쌍둥이를 낳고 남편과 사별한 친구는 아직 결혼 안하고 쌍둥이도 없는 내 소식을 듣자 안도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직장 스트레스를 토로했던 한 친구는 이제 나는 더이상 그 현장에 있지 않고 한국에 산다는 사실이 여전히 그 정치판에 존재하는 자신의 현실에 위안받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작년에 만났던 남자때문에 추한 모습을 보였던 친구들은 인스타로 보는 나의 "바쁜 모습"에 연락을 왜 그동안 잘 하지 않았냐며 둘이 똑같이 나에게 잘 지내냐는 질문을 했다. 악의 없는 호기심인 건 알아도 그게 단순한 안부 질문이 아니란 건 알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잊고 있던 얼굴이 떠올랐다. 많이 웃었지만 그 이상으로 울었던 시간들, 나를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나를 뜯어버린 순간들. 하지만 이 모든 건 당시 추한 모습을 보였던 내 탓이니 어쩔 수 없지, 라며 나는 잘 지내고 있고 크고 작은 인간관계 갈등은 언제 어디에나 있지만 그때같은 경우는 없다고만 대답했다. ...괜찮다. 사람은 다 그렇다.
만약 하버드 박사를 밟고 있는 그 동생이 사실은 알고보니 집에 빚이 있고 몸이 아프고 이혼을 했고 아이가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안 생긴다고 했으면 나도 저들처럼 그 똑같은 기묘한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사람인 걸.
그런 마음이 되지 않으려고
혹은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가라앉히기 위해
그렇게 뛰고 쓰고 걷고
명상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멀리 할 사람 멀리하고
끊을 사람 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어딜 가나 멋지고 잘 생기고 예쁘고 능력있고 긍정적이고 성격 좋은 사람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아무리 인간 세상 4%는 쪼다라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도
그 4%가 신경이 안 쓰일 정도였는데 -
하버드는 부럽구나.
부러운 건 부럽다.
한번 더 정신 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