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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dal Oct 24. 2021

오직 세 사람, 아니 두 사람

다섯 명의 식구, 어릴 때부터 줄곧 그대로였던 집 전화번호 그리고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들려오던 아빠의 배웅 소리. 머릿속엔 또렷한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


결혼이나 출산 연령 자체가 늦어진 요즘과 달리 예전에는 늦둥이들이 흔치 않았다. 당시에 우리 엄마를 처음 마주한 반 친구들이 “너희 할머니야?”라고 묻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점차 엄마의 주름이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보다 더 자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알고 보면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건지 아빠는 좀처럼 나의 입학식, 졸업식 같은 큰 기념일에 참석하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이미 성인이 되었던 언니들은 각자의 사정을 안고 일찍 독립을 했다. 그래서 집에서도, 봄이 되면 찾곤 했던 여의도 벚꽃로에서도 우리는 세 사람 일 때가 많았다. 아빠,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 몇 해 전 아빠가 떠나고 언니가 시집을 간 이후, 종종 가족이 몇 명인지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다. 결국 더 이상 다섯 명도 세 명도 아닌 오직 두 사람이라는 결론이 된다.


몇 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모종의 일을 겪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점점 기력이 약해지는 엄마가 집에 혼자 있는 게 신경이 쓰이기도 해 퇴사를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내 신분은 ‘아직도 꿈을 안고 살지만 그렇게 어리지도 않은 사람’에 머무르는 중이다. 계절로 비유하면 늦여름에 들어서는 나와 겨울에 진입한 엄마가 하루란 시간을 종일 공유하게 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접점이 있기 힘든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조용한 집에 있다 보면 정말 뜬금없는 과거 기억에 꽂힐 때가 많다. 어릴 때 메고 다니던 가방의 디자인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런 이유를 알 수도 없고 갑자기 그곳으로 뛰어드는 기억을 잡을 수도 없다.


가끔은 공기도 시간도 멈춘 듯한 곳, 거기서 그다지 즐거울 것도 없었던 예전 기억을 만지작 거리는 두 사람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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