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dal Oct 24. 2021

동네 마트에서 설레다

좀처럼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 집안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도 언제나 비슷하다. 보통 엄마가 날씨에 대한 푸념을 하거나 내게 매끼 식사 메뉴를 묻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오래간만에 날씨가 좋거나 괜찮은 식재료가 준비되어 있을 경우에 말을 좀 더 길게 이어갈 수 있다. 최근에 한 가지 추가된 것이 재난 지원금에 대해서이다. 엄마는 마치 사용 기한이 두 달 뒤가 아닌 이틀 뒤인 것처럼 나를 몰아치는 중이다. 


동네 시장에 있는 마트에 들려 엄마가 신신당부한 휴지를 제일 먼저 고른 뒤 다른 것들을 둘러봤다. 라면, 두부, 샴푸... 식재료와 생필품 몇 개를 고른 뒤 별 의미 없이 향한 발걸음 끝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다섯 글자가 나를 아주 잠시 설레게 했다.  


“핫초코 미떼”


전혀 PPL은 아니다. 엄마에게 휴지, 세제에 대한 이야기만 줄기차게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다가 문득 ‘핫초코를 공짜로 살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며 잠시 설레었다. 소확행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 2년 전,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 매일 같이 인근 공원을 두 시간씩 산책했을 때가 있었다. 사실 그런 순간이 좋았지만 특별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공원을 누볐던 마지막 순간이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어릴 때 행복이라고 여겼던 커다란 무언가, 그것이 점차 쪼개지고 부스러져 소확행이라는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그것마저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