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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Feb 02. 2023

자전거와 글쓰기

이유 모를 두려움과 맞서 싸우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이십 대 중반이 돼서야 자전거를 처음 배웠다. 어릴 때 인라인스케이트부터 킥보드, 네발자전거까지 전부 섭렵한 기억은 있건만 왜 두 발 자전거는 안 배웠을까. 골똘히 생각했지만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 친구들과 떠들다 자전거 이야기가 나올 때면 괜히 부끄러워져 죄 없는 손톱만 괴롭혔다.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때때로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투명한 물에 떨어진 물감 한 방울처럼 스멀스멀 퍼져나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지레 겁부터 먹은 나는 나조차도 속였다. '뭐, 굳이? 자전거 안 타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


 하지만 역시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했던가. 서울에 살 일은 전혀 없겠다 생각했던 내가 서울에 와 있다. 신기하게도 서울에서 가장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자전거였다. 한강에서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배우는 어린아이들. 나와 자전거의 인연이 빨간 실로 연결되어 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드문드문 생각나던 이유가 이러려고 그랬던 걸까. 참 멀리도 돌아왔구나.



 

 엄마가 서울에 놀러 온 틈을 타 한강에서 자전거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난 그 어느 때보다 떨렸고, 비장했다. 자전거만 탈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 무엇이든 해낼 거라 믿는 사람처럼. 친구들 몇몇이 가르쳐준다는 걸 거절한 건 내 알량한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보다 삶에 찌든 어른이 되어 자전거를 배우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 생각했다.


 운동 신경이라고는 없는 나는 예상을 뒤엎고 자전거를 금방 배웠다. 십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엄마도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이런 성취감은 너무나 오랜만이라 생경했다. 겁을 지레 먹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바람을 가른다는 느낌이 좋았다. 나도 이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묘한 안도감. 원의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


이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따릉이로 한강을 질주하며 자전거 연습을 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타다 보니 자전거가 편해져서 즐기며 탈 수 있게 되었다. 무서워서 앞만 보고 달렸던 나는 사람 구경도 하고, 주변 풍경도 감상하며 달린다. 이런저런 생각도 한다. ‘내일 뭐 먹지’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까’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다 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날 북돋아 주는 생각들이 내 몸을 휘감는다. 신기했다. 그렇게 무서워했는데 이리도 익숙해지다니. 나를 둘러싼 단단한 껍질이 금이 가며 갈라지더니 한 겹 깨진다. 나의 우주는, 이렇게 확장한다. 내 껍질은 앞으로 몇 겹이나 남아있을까.



 

 취미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독서, 드라마와 영화 보기라고 답했다. 난 슬쩍 글쓰기도 덧붙이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질까 그냥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 취미는 그냥 즐기기 위한 거잖아. 그냥 글 쓰는 거 좋아한다고 말할 걸 그랬나.’하며 여물을 되새기는 소처럼 그 말을 목구멍에서 내내 곱씹어야 했다. 가끔 친구가 ‘너 글 잘 쓴다.’고 할 때도 빈말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난 무엇이 두려운 걸까?


 나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 글을 쓰고, 다시는 펴 보지 않았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내가 누구인지 특정될 만한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 애썼다. 안 좋은 기억은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자물쇠를 이중 삼중으로 걸어버렸다.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내 글은 행복한 이야기뿐이었다. 불행한 이야기들은 비공개로 돌려버리거나 삭제해 버렸다. 마치 살면서 불행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내가 왜 그러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무엇이 두려운 걸까. 하지만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두려워해도 괜찮다고. 언젠가는 이겨낼 수 있다고. 자전거를 타지 못했던 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지금처럼, 그 시간들은 과거일 수는 있어도 미래일 순 없어.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그때 같다. 어떤 글을 쓸지 일주일 내내 생각하고 끄적거리던 순간들,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아빠 얘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소매로 눈물을 거칠게 닦으며 글을 쓰던 순간, 내 글의 독자가 있다는 짜릿함. 자기 전 누워서 글에 대해 들었던 좋은 말들을 상기하는 시간들. 자전거를 처음 탈 때처럼 두렵지만 설레는 기분으로. 겁을 잔뜩 먹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전거를 늦게 배워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 모를 두려움과 맞서 싸우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가장 바깥쪽 껍질이 다시 한번 금이 가며 깨진다. 껍질이 아주 많이 남아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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