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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Oct 26. 2023

어쩌면 우린 연결되어 있다

20년 전으로부터 날아온

유난히 눈이 일찍 떠진 9월의 첫날이었다. 침대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공허한 눈으로 인스타그램을응시한 채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기를 반복했다. 세 번쯤 올렸을 때 어떤 이름에 눈이 걸려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화면의 움직임도 점점 느려지다 멈췄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매일같이 붙어 다녔던 친구의 이름이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이상하게 그 친구라는 확신이 들었다. 낯익으면서도 무척 낯선 이름이었다.


프로필 사진을 눌러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갔으나 비공계 계정이라 게시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몰래 염탐하려 했는데 아깝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나가려다 팔로우 요청을 할까 고민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용기가 솟았다. 까짓 거 거절당하면 그만이지 뭐, 오늘은 9월 1일이니까.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내 용기가 전해진 것인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팔로우를 수락했다는 알림이 왔다. 이렇게 빨리 수락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라 나타났다 금세 사라진 알림을 보고는 오히려 내가 당황해 버렸다. 나를 기억하고 받아준 건지 긴가민가했지만, 팔로우 요청을 수락했다는 알림이 마치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다시 친구의 계정에 들어가니 굳건히 잠긴 자물쇠 대신 정사각형의 사진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놀랍게도 피드 사진 속 해사한 얼굴로 웃고 있는 친구는 지나가다 마주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어린 시절 모습과 똑같았다.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자마자 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와 학원차를 함께 타고 다니던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피드에 웨딩 사진이 있는 걸로 보아 결혼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사진들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휴대폰 메모앱을 켜 친구에게 보낼 메시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시키는 일도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어디 답이라도 나와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내가 기억이 나는지, 뜬금없이 팔로우를 걸어서 놀랐을 텐데 불편했다면 미안하다, 너와 놀던 어린 시절 추 억이 나에겐 좋게 남아있다고, 인스타그램은 하이라이트 장면들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서 보기 좋다고, 소식 알게 되어 기쁘다고, 늦었지만 결혼 축하하고 9월의 시작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는 복사해서 인스타그램 메시지에 붙여 넣기 한 뒤에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부디 내 마음이 친구에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친구는 메시지를 바로 읽은 건지 곧 답장이 왔다. 답장은 기다린 시간보다 더 길고 따뜻했다. 나를 기억하고는 어린 날이 어렴풋이 떠올라 좋았다고, 잊지 않아 주어서 고맙다고도 덧붙였다. 친구의 마지막 문장이 가끔 생각난다. '서른이 되기 전 다시 만난 내 친구야, 살다가 좋은 날에 꼭 만나자.'


보고 싶단 말은 삼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최선임을 알기 때문이다. 몇 번 주고받았을 뿐인 메시지 이후로 내가 교사와 관련된 뉴스 기사에 '좋아요'나 '싫어요'를 누르게 되었다는 걸 너는 알까?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잘 살고 싶어 지다가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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