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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쭌 Apr 04. 2023

19살, 그 아픔의 시작

 19살 정신분열증으로 입원, 아픔의 시작


세 번 입원했다. 고3 때 한 번, 22살에 한 번, 그리고 마지막 입원은 직장생활 중에서이다. 고3 19살 때 여름 두 달간의 입원은 향후 굴곡진 삶을 살리라는 최초의 균열이었다.

 1987년 당시 고3일 때는 시한부 종말론의 기폭제가 되는 책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는 책을 읽고 너무나 두려움과 큰 충격으로 마음이 요동쳤다. 흔히 휴거 소동으로 표현하는 1992년 10월 시한부 종말론의 씨앗은 이미 1987년부터 배태되어 있었다. 종말론에 대한 무시무시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의 확신에 대해 자신 없어하면서도 입시경쟁에 시달리며 안 먹고 안 자는 생활을 하다가 급기야는 더운 여름에 섬망증을 경험하고 입원했다. 당시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을 얻었으나 퇴원 후 몇 년간 외래치료하던 어느 날에 의사가 사고능력 자체가 지극히 정상인 것을 볼 때 이 병은 양극성 정동장애라고 말해 주었다.

  세 번째 입원 때는 분열형 정동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으니 기분장애와 비합리적인 생각 등을 동시에 가진 것 같기도 하다.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일이 닥칠 때 압도적으로 제압당할 것으로 보인다는 검사결과도 받았다. 이러한 진단은 마음속에 크나큰 두려움을 갖게 하였다. 

  첫 번째 입원을 폐쇄병동에서 보내는 두 달 동안 아버지는 쌕쌕 오렌지와 빵집베이커리 몇 개를 가지고 병문안 오시곤 했다. 누군가 병문안을 온 것을 알게 되면 환자들이 병문안을 받은 사람을 둘러싸고 길게 원을 그렸다. 모두들 먹을 것 냄새를 맡아서 모여드는데 조금씩 빵을 떼어서 나눠주어야만 했다. 정말 순식간에 빵이 없어지긴 해도 그렇게 나눠먹는 빵이 엄청나게 맛있었다

  폐쇄병동은 흔히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한다. 정말로 자기 방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복도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대부분 걷기를 반복한다. 답답한 일상을 활기차게 하는 것은 쇠창살을 길게 질러 빼는 삐그덕 소리. 드디어 식사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는 저녁 다섯 시가 되면 환자들이 철문이 기다리길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선다 열리는 소리와 함께 기뻐서 한 계단 내려가면 식당에서 배식을 받는다. 덩어리로 된 감자와 된장 정도였는데 지금 먹으라고 하면 못 먹겠지만 그때는 그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목사를 초빙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1층의 남자들과 2층의 여자들이 같이 모여 있는 시간이 있고 탁구대에서 탁구를 칠 수 있었다. 탁구를 유독 유독 잘하는 예쁜 간호사가 있었는데 후에

내가  퇴원할 때 " 영준아 열심히 살고, 앞으로는 이런 데 오지 마 ' 하였다.

  조증삽화의 시간, 환상과 환청, 과대망상증의 상태에 있었을 때는 정말 엄청난 즐거움과 기쁨 속에 신의 대리인이 된 것 같은 황홀함이 있었는데 막상 막상 병에서 깨어나니 바라던 소위 일류대의 꿈이 날아간 것에 대한 비통함이 마음을 괴롭혔다. 괴로워서 병원 실내의 벽에다 머리를 쿵쿵거리며 몇 번 부딪다가 남자 간호사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병원생활 끝에 퇴원을 하고 지방 국립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원하던 대학에 못 가던 좌절감 속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힘겨운 과정 속에서 20대의 대부분을 허랑방탕하게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텅 비어 있던 시절이었다. 향후 직업을 가지고 올바른 몫을 감당하며 살아낼 자신감이 뿌리째 흔들렸다.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두려웠다. 하지만 기나긴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생각해 보면, 한 직장인으로서는 완전히 실패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값진 것들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정신을 얻는 대신 병든 영혼을 얻었으며 이러함으로 인해 예술가적인 삶을 살아갈  운명을 가졌다는 강한 확신이 들면서 충만한 위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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