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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Mar 28. 2021

실패에도 반전은 있다

실패를 실패라고 서둘러 정의하지 말자

 작년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두 개의 브런치 북을 준비해서 응모했다. 사실 내 책이 안될 걸 알면서도 도전해보고 싶어서 준비했던 거다. 브런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 글 수준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않나. 한참 부족하지만 그저 도전이 주는 그 에너지가 좋아서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웃긴 게, 안될 걸 알았으면서도 막상 안되니 우울해지고 글을 쓸 마음이 사라졌다. 출판 프로젝트에 마음을 집중해서 인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실패감에 빠져서 인지, 한동안 글 쓸 마음이 도통 생기지 않아 몇 달을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결국,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글을 쓰며 받는 그 따스한 기운이 그리웠고, 글쓰기가 주는 마음의 안정을 원했다. 두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는 바쁜 하루 중에 오롯이 혼자 글을 쓰는 그 시간이 귀한 "나만의 시간" 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음의 정리뿐만 아니라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게 나에겐 글쓰기이다.

그 두 권의 책을 볼 때마다 종종 응모 실패작이라는 꼬리표를 내 스스로 붙였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은 내 마음속에 파묻고 매거진에 글을 조금씩 올렸다. 아직 하지 못한 여행 이야기를 적기도 하고, 시드니에서 살아가는 일상 에세이를 쓰기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핸드폰에 있는 브런치 앱을 열었다. 브런치 홈에 낯설지 않은 책 이름이 보인다. 웬일인가. 내 책이다. 처음 있는 일에 반신반의하며 책을 열어보니 정말 내가 쓴 게 맞다. 끝에 쓰여있는 "브런치가 추천합니다"라는 이 말이 내 가슴에 꽂힌다. 감동이 갑자기 밀려온다.

어떤 이에게는 이게 별일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이 일은 크나큰 격려로 느껴진다. 실패작도 때론 실패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고. 글을 꾸준히 쓰라고, 포기하지 말고 써보라고,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보라는 신호로 느껴져서 마음이 울컥한다. 당장 어떤 결과를 보지 못해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가 있을 수도 있다고 누군가 속삭이는 것만 같다. 당장 경제적인 보상이 없어도, 출판 계약을 하지 못해도, 그냥 온전히 글쓰기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든다. 더 단단해지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한동안 잠잠했던 알람이 계속 울린다. "누구누구가 구독합니다"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하다. 이 부족한 글을 읽고 구독을 결정해주는 분들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분들에겐 별거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그 버튼 하나로 난 다시 키보드에 내 마음을 실을 힘을 얻는다. 길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생각지 못한 응원의 메시지를 받은 느낌이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이에게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구나 싶다. 내가 실패했다고 느낀 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전달된다. 자꾸 누군가 따뜻한 눈길로 잘하고 있다고 무언의 미소를 건네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 이틀만의 새로 생긴 구독자수가 일 년 동안의 있던 구독자 수를 넘어섰다. 물론 숫자에 연연하는 건 아니지만, 이 숫자가 상징하는 그 마음이 감사하다. 내 글을 과연 누가 읽어줄까. 대답 없는 공허한 벽에 말하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똑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글이 읽히고 있음에 심장이 뛴다. 그 이틀 동안, 내가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 노크 소리가 내 가슴을 두드린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이거구나 싶은 마음이 다시금 찾아온다. 실패도 막을 수 없는 일, 육아에 지친 육신도 막을 수 없는 일,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다. 당장 돈을 벌 수 없어도, 그저 글 쓰는 행위만으로 괜찮은 것, 그걸로 위로를 받는 하루가 쌓이다 보니, 글쓰기에 더 애정이 간다. 그래 해보자. 나를 위해, 나의 소중한 구독자분들을 위해.


호주 퍼스 여행 중 찍은 사진. Stay on paths. 실패해도, 부족해도 이 길을 걷자.


실패에도 반전은 있다. 생각해보니 지금 살고 있는 시드니도 반전 중에 하나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는데 되지 않아서 오게 된 호주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진 몰랐다. 15년 후에도 난 여전히 이 곳에 있다. 인생의 묘미 중에 하나는, 미래를 아무리 계획해도,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는 것 아닐까.  내가 아직까지 시드니에 살게 될지 20대 초반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워킹 홀리데이에 떨어진 덕분에(?) 호주에 오게 되었고, 그 실패 하나로 내 삶은 참 많이 바뀌었다. 현재에서 당면하는 실패는 상당히 커다랗고 비참하다. 우울하고 씁쓸하며 나의 모든 걸 앗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실패가 시간이 한참 지나 과거가 되어버리면, 실패가 결국 그리 실패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적어도 난 그랬다. 시드니에서 몸이 아파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수술한 뒤에 집에 머물러 있을 때만에도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때 그 실패 덕분에 난 밀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던 공부를 말이다. 실패는 생각보다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매일도 달라질 것이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실패를 퍼부을 것이다. 물론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겠지만 말이다. 실패를 직면했을 때, 그 실패를 온전히 실패로만 보지 않고 그 뒤에 있는 뒷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싶다. 이 실패 뒤에 있을 일들은 날 또 어떤 길로 데려다줄까. 시드니에 온 것처럼, 다시 공부를 하게 된 것처럼, 브런치에 글을 계속 쓰게 된 것처럼, 이 실패는 또 어떤 반전을 보여줄까. 그렇게 넉넉히 생각하는 날이 조금 더 많아지길 혼자 다짐하는 늦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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