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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Mar 23. 2021

민들레 씨와 먼지가 흩날린다

지극히 평범한 순간이 주는 확신

 둘째 아들의 미소가 다른 이들의 미소를 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무표정한 사람들에게 유모차에 앉은 아기가 손을 흔들며 미소 짓는다. 열이면 열, 그 딱딱한 표정이 허물어진다. 몇 초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찬란한 미소가 건너편에서 다가온다. 그 몇 초 밖에 되지 않는 순간이 며칠간 내 마음에 잔뜩 남아있다. 어쩌면 난, 나만의 세상 안에 살고 있다가 이런 순간들이 세상 밖으로 이끄는 기분이다.


첫째 아들 또한 낯선 사람을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건넨다.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은 이런 상황이 간혹 (혹은 자주라고 말해야 더 솔직한 걸 수도 있다) 당황스럽다. 한 번은 쇼핑센터에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아저씨와 같이 탄 적이 있었다. 첫째 아들은 “Hello”로 시작해 자기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야기를 한다. 차가운 표정의 아저씨가 혹시나 번거로워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말 다정스럽게 대화를 해준다. 자기도 학교가 그립다며,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나눠주는 그 따스한 여유가 참 많이 고마웠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세계 여행을 했을 때도 첫째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놀려고 다가가는 일들이 많아서 다른 부모님들과 대화를 많이 했었다. 그 대화를 통해서 다른 나라들의 다양한 육아 스타일도 들을 수 있었고, 여러 다른 문화를 배우게 되었다. 어쩌면 남편과 둘이 여행을 했다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 대화를 통해 난 잠시나마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었고, 때론 타인에게 누구보다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여러 걱정이 많았던 나에게 다른 나라 엄마들이 안심을 하게 해 주었고, 그 길지 않던 대화로 큰 에너지를 받곤 했다.


다른 어떤 존재보다, 아이들이 나를 이 세상에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되어준다. 내 안에 갇혀 있고만 싶은 순간에도 조금씩, 천천히 내 손을 잡아당기면서 같이 나가자고 한다. 그 미소에, 그 순수한 마음에 내 마음이 녹는다. 그래, 너의 손을 잡고 이렇게 가다 보면 나도 조금 더 밝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너희들이 이렇게 엄마를 가르쳐 준 큰 마음을 잊지 않고 살게. 너희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쩌면 이렇게 다채로운 색이 많을까. 너희들은 어쩌면 그리 작은 것들에도 그렇게 커다란 경외를 표하는지. 첫째 아들이 길가에 있던 민들레를 가져다 큰 숨을 내어 불기 시작한다. 둘째 아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그 민들레 씨를 커다란 눈동자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둘째 아기가 전에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는다. 입은 점점 더 커지면서 처음 보는 표정으로 “ 이건 정말 충격적인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 같다. 그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첫째도, 나도, 남편도 정말 크게 웃었다. 민들레 씨가 바람에 흩날리는 그 순간이, 평범한 그 시간이 더 이상 평범하지도 사소하지도 않다. 순간, 이게 행복이라는 확신이 차오른다. 이런 확신이 드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기보다, 내 글로 찍고 싶다. 내 마음에, 내 가슴속 깊이 저장하고 싶은 순간이다. 내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 어두움이 내 마음을 두드릴 때, 꺼내어 보고 싶은 기억은 바로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씨를 보았던 우리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도 많지만, 그때의 우리가 있어서 충분하다.



첫째 아들이 2년 전에 물었다. 우린  차 안에 있었고, 햇빛에 먼지가 날리는 게 보인 순간이었다. 그게 뭐냐고 묻길래 난 먼지라고 대답했다. 그다음 아들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차 안에서 날리는 먼지를 보면서 “아름답다” 며 신기한 듯 한참을 먼지를 바라본다. 햇빛에 흩날리는 먼지가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먼지와 아름다움의 연관성이라니. 멍하니 그 먼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왜 아이가 아름답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먼지와 민들레 씨, 둘 다 찬란하게 빛난다.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또 경외를 표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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